[사이버 넷]뒤죽박죽 동화… 『컴키드 다 모여라』

  • 입력 1997년 8월 27일 07시 39분


연극「이상한 사이버나라」
연극「이상한 사이버나라」
참 이상하다. 담배피우던 시절의 호랑이가 곰방대 대신 휴대전화를 들고 다닌다. 나무꾼이 감춘 날개옷의 임자인 선녀는 너무 못생겼고, 그래서 데리고 살까 말까 망설이자 이번에는 선녀가 『결혼 안해주면 인당수에 빠져죽겠다』고 앙탈을 부린다. 자기가 심청인 줄 아나? 햇님이와 달님이는 동아줄을 타다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고, 콩쥐와 장화 홍련은 서로 『우리 새 엄마가 더 낫다』고 말다툼을 벌인다. 모두 컴퓨터 바이러스 때문이다. 동화와 컴퓨터가 만난 도깨비같은 세계를 그린 연극, 그래서 제목도 「이상한 사이버나라」다. 연희단거리패(대표 이윤택)와 정동극장이 「컴키드」를 겨냥해 만든 사이버연극이다. 무대는 컴퓨터속의 가상공간. 초등학생인 희망이가 컴퓨터게임만 한다고 나무라는 엄마에게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순간 엄마는 컴퓨터 바이러스에게 납치된다. 이때 슈퍼맨처럼 나타나는 담배피우는 호랑이. 희망이는 호랑이와 함께 빨리바이러스 대충바이러스 그리고 지구를 멸망시키려는 최악의 괴물인 허무바이러스를 물리치며 동화속 나라로 엄마를 찾아나선다. 『동화나 사이버공간이나 모두 가상의 세계라는 점이 같죠. 상상력과 환상 신비를 갖춘…』 작가 조석준씨(성균관대 강사)는 이렇게 말하지만 이 사이버연극의 독특한 점은 소재만 컴퓨터에서 따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극의 흐름과 전개가 컴키드의 의식구조 행동양식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우선 나무꾼과 선녀, 콩쥐 팥쥐같은 전래동화가 새롭게 반죽되어 펼쳐진다. 줄거리 해체, 캐릭터 해체, 에피소드 해체라는 희한한 형태의 「하이퍼 텍스트」로 배치된다. 선녀는 선녀로되 어른들 가슴 속에 새겨져 있는 그 선녀가 아니다. 또 주제어를 따라 시공을 건너뛰며 자유롭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인터넷 항해를 방불케 한다. 컴맹세대인 어른들은 종잡을 수 없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그런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얘기를 컴키드들은 기막히게도 잘 알아듣는다.비연속적 탈규칙적인 스노보드와 롤러브레이드를 요리조리 타고다니는, MTV에 열광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고 리모컨을 눌러대는, 전자우편 목록만 힐끗 보고서도 내용까지 알아차리는 「카오스의 아이들」만의 능력일까. 「이상한 사이버나라」속의 엄마는 아이들과 컴퓨터세계를 갈라놓으려는 얼간이로 그려진다. 그래도 희망이가 엄마를 구하는 무기는 컴퓨터 조종 능력이 아니라 동화에서 배운 주문과 동요, 그리고 뜨거운 가슴이었다. 아무리 세상이 첨단화해도 사람과 사랑 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인 셈이다. 9월중순부터 정동극장에서 각 초등학교의 「문화 특활」주문에 따라 공연될 예정. 02―773―8960 〈김순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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