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은 적’ ‘日과 기본가치 공유’ 삭제, 2018 국방백서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청년이 묻고 우아한이 답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1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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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18 국방백서’에서 국방부는 주적의 개념을 재정의 했습니다. 또한 일본과 기본가치를 공유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국방 주요 협력국 순서를 한일 한중 한러에서 한중 한일 한러 순으로 수정했는데요. 이러한 변화가 향후 한반도와 주변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이나경 한국외대 한국학과 (아산서원 14기)


A. ‘북한이 주적(主敵)’이라는 표현은 1995년판 국방백서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북한 핵 개발 의혹이 고조되던 1994년 3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교환 실무접촉에서 북측 대표가 우리 측 대표에게 “여기서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고 협박한 것이 국민적 공분을 사자 당시 김영삼 정부는 국방백서의 ‘주적’ 명기로 강경 대응을 했습니다. 이후 주적 표현은 ‘2004 국방백서’에서 사라지고 ‘직접적 군사위협’, ‘심각한 위협’으로 대체됐다가 천안함과 연평도 도발 이후 발간된 2010~2016 국방백서엔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표현으로 기술됐습니다.

국방부가 최근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서 ‘북한은 적’이라는 표현을 삭제한 것은 4·27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합의로 달라진 남북관계를 반영한 걸로 풀이됩니다. 핵·미사일 도발 중단과 세 차례의 정상회담, 비무장지대(DMZ)내 최전방 감시초소(GP) 시범철수 및 공동유해발굴 등 화해평화 무드 속에서 북한을 ‘적(敵)’으로 정부 공식문서에 규정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군 당국자는 “한반도 평화화해를 추구할 ‘대화 상대’인 북한을 ‘적’으로 계속 두는 것은 남북관계와 비핵화 대화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더 다가서도록 하기 위한 적극적 유화책으로 봐달라는 겁니다. 우리의 화해 평화조치에 북한도 호응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짙게 묻어납니다.


하지만 너무 앞서간다는 반론도 제기됩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과 재래식 전력은 더 강화됐고, 여전히 대한민국이 당면한 최대위협인데도 적 표현을 서둘러 폐기함으로써 대북 군사위협과 장병들의 대적관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이를 악용할 것이라 우려도 있습니다. 당장 3월초로 예정된 키리졸브(KR) 한미연합훈련의 철폐 근거로 국방백서의 적 표현 삭제를 들고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적이 아닌 평화 화해의 동반자이자 같은 민족을 상대로 외세와 전쟁연습을 하는 건 온당치 않다”면서 한미연합훈련의 영구 중단과 미 전략자산의 전개 금지를 요구할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북한이 우리의 선의에 화답할지, 남남갈등의 호재로 이용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편 2019 국방백서에선 ‘한일 양국은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를 공유’라는 표현이 삭제되고, 군사교류협력 기술순서도 한일, 한중, 한러에서 한중, 한일, 한러 순으로 변경됐습니다. 일본과 ‘북핵·미사일 위협’에 협력한다는 내용도 빠졌습니다.

이는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 관계가 고스란히 투영된 걸로 보입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와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이어 ‘레이더 갈등’까지 최근 한일 관계는 살얼음판 같은 긴장의 연속입니다. 특히 우리 함정이 북한 어선 구조 과정에서 자국 초계기에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照射)했다는 일본의 주장을 둘러싸고, 양국 군 당국은 언론을 통한 공방전과 무관 초치(招致) 등 대결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일본 정부의 국내 정치용 과잉 대응이 화근으로 지적됩니다. 최근 이민정책에 대한 반발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의 외교 갈등을 지지층 결집에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러다가 한일관계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아베 정부가 지금처럼 ‘한국 때리기’를 고집할 경우 양국 정부와 국민감정이 회복하기 힘든 수준으로 나빠져 한일관계 전반에 큰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외교안보 분야는 물론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방위적 혐한(嫌韓)과 혐일(嫌日) 갈등과 충돌로 비화될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악의 사태를 피하려는 기류도 감지됩니다. 소모적이고, 감정적 공방이 길어질수록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한일 양국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북한 비핵화 등 한반도 외교안보 정세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일본으로선 언제까지 한국과 대립각을 세울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두 나라 모두 미국의 주요 동맹국으로 한반도 등 역내 안정을 위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점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미국을 방문 중인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이 17일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부 장관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레이더 갈등이) 한미일의 안보연대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응을 검토 중”이라며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한미일 3국의 협력태세를 확실히 갖춰나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취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허위 주장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를 통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바 있습니다. 양국 모두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최악의 선택은 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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