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서동일]33세 사우디 왕세자는 어떤 리더가 되려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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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개혁을 이끌어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우디 정부는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의 배후에 왕세자가 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비판과 의심의 눈길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AP 뉴시스
사우디아라비아 개혁을 이끌어온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사우디 정부는 자말 카슈끄지 실종 사건의 배후에 왕세자가 있다는 의혹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비판과 의심의 눈길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AP 뉴시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올해 6월까지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이란 이유로 운전도 못하는 나라였다. 여성이 사회 활동을 하려면 아버지 혹은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후견인제도(male guardianship system)는 아직도 사우디 사회에 뿌리 깊다.

이런 사우디에서 요즘 ‘개혁’ 혹은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여성에게 운전과 축구 관람을 허용했고, 남성들과 어울려 문화공연도 즐길 수 있게 했다. 사우디 언론은 연일 주요 뉴스로 비행기 조종 자격증을 땄거나 정보기술(IT) 관련 경진대회 등에서 우승한 여성들을 소개한다. 사우디 사회, 그리고 왕실이 변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뉴스들이다.

그런데 이런 ‘뉴스 홍수’ 속에서도 수십 년 동안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인권 운동가나 언론인의 노력을 조명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82)의 뒤를 이어 사우디를 이끌게 될 사우디 내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33)의 결심과 노력만 부각할 뿐이다. 변화를 외쳐왔던 인권운동가, 언론인 중 상당수는 지금 감옥에 있다. 심한 경우 실종돼 생사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사우디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무함마드 왕세자는 2015년 국방부 장관을 맡았다. 당시 서른 살의 젊은 나이로 내린 결정은 예멘,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는 것이었다. 시아파 맹주국 이란을 견제할 목적이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사우디가 얻은 실익은 별로 없다는 평가가 많다.

사우디 개입 후 시리아 분쟁은 격해지기만 했다. 사우디가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몰아내겠다며 지상군 및 전투기 편대를 배치하자 시아파인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러시아가 크게 반발했다.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사우디가 시리아 내전을 ‘미니 세계대전’으로 키우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지금 시리아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는 사우디가 아닌, 터키 이란 러시아가 앉아있다.

시아파 후티 반군을 몰아내겠다며 개입한 예멘 내전도 이렇다 할 실익을 못 얻었다. 전투기 공습을 주도해 온 사우디군으로 인해 정작 피해를 입은 것은 반군보다 민간인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8월에는 사우디 전투기가 통학버스를 오인 폭격한 사고로 민간인 55명이 숨졌다.

카타르와의 국교 단절, 캐나다와의 외교적 갈등도 ‘마찰만 있고 실익은 없다’는 얘기가 많다. 사우디가 대규모 운하까지 파서 고립시키겠다고 했던 카타르는 터키, 이란과 교역을 확대하며 어려움을 상당부분 극복해 나가고 있다. 사우디 기업들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캐나다 관련 모든 무역과 투자를 동결하기로 한 왕실의 결정으로 가장 피해를 본 것은 ‘강제 전학길’에 오르게 된 캐나다 내 사우디 유학생 1만5000명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반대로 가장 득을 본 것은 급하게 나온 사우디 학생들의 방을 비교적 싼값에 얻은 다른 유학생들이란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제2총리, 경제개발위원장, 반부패위원장 등을 겸임하며 사실상 사우디 정치·경제·외교를 총괄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졌지만 그 힘을 바탕으로 내린 결정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현재까진 이처럼 미숙하거나 성급하거나 실익이 없었다.

2일 터키 이스탄불 내 사우디 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실종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는 결국 살해된 것으로 결론 났다. 사우디 정부는 ‘영사관 내 사망’은 인정했으나 ‘무함마드 왕세자의 개입 의혹’은 부인했다. 실제 무함마드 왕세자가 살인을 지시했는지, 아니면 납치만 지시했는지, 발표대로 이 사건과 무관한지는 아직 알 길이 없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오늘 이 순간에도 “활기찬 사회, 번영하는 경제, 진취적인 국가를 만들겠다”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자국 영사관에서 자국의 한 언론인이 실종되고 살해됐음에도 “영사관을 나갔다” “카메라 녹화가 안됐다” 등의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던 대처 방식은 그가 지향하는 선진 국가의 모습과는 도저히 어울릴 수 없다.

이제라도 무함마드 왕세자와 사우디 왕실은 카슈끄지 사건의 전말과 실체를 국제사회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무함마드 왕세자는 개혁과 결단의 젊은 지도자가 아닌, 앞과 뒤가 다른 30대 독재자로 기억될지 모른다.
 
서동일 카이로 특파원 dong@donga.com
#사우디아라비아#개혁#무함마드 빈 살만#자말 카슈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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