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한기재]28세 ‘샌더스 후계자’의 美 정치판 ‘배트 플립’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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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판 ‘진보 돌풍’의 주인공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왼쪽)와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주 CBS 시사프로에 나란히 출연해 활짝 웃고 있다.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 유튜브 영상 캡처
미국 정치판 ‘진보 돌풍’의 주인공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왼쪽)와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지난주 CBS 시사프로에 나란히 출연해 활짝 웃고 있다. CBS방송 ‘페이스 더 네이션’ 유튜브 영상 캡처
한기재 국제부 기자
한기재 국제부 기자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는 야구장에서 하품하는 젊은 세대들 때문에 고민이 많다. 지난해 말 집계된 미국 갤럽 여론조사에서 ‘야구를 가장 좋아한다’고 답한 미국인은 전체의 9%로 1937년 집계가 시작된 이후로 최저였다. 젊은층 영향이 컸다. 18∼34세 응답자 중 야구를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로 꼽은 비율은 6%로 미식축구(30%)는 물론 농구와 축구(각 11%)보다도 낮다.

메이저리그 야구장엔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각양각색의 응원가도, 각종 율동과 구호를 주도하는 치어리더도 없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각·청각적 자극에 익숙한 이른바 ‘스냅챗 세대(10대 후반∼20대 중반)’에게 그런 야구는 ‘지루한 스포츠’일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중 하나인 ‘스냅챗’은 등록한 사진과 영상 콘텐츠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스냅챗 세대’란 표현엔 ‘똑같고 심심한 건 싫다!’는 젊은이들의 외침이 담겨 있는 셈이다.

한 야구선수는 “욕설이 허용되는 야구 중계방송은 어떻겠느냐”고 제안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는 파격을 수용하는 데 서투르다. 한국에선 일상인 ‘배트 플립(홈런을 친 뒤 배트를 내던지는 것)’조차도 투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해 금기로 취급된다.

젊은 세대 이탈로 인한 메이저리그 ‘위기설’과 관계자들의 보수적 대응을 바라보며 미국의 유서 깊은 다른 거대 조직이 연상됐다. 바로 미국 민주당이다.

민주당 역시 젊은층의 관심이 절실하다.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선 반(反)트럼프 성향이 강한 젊은층을 투표장으로 불러내야만 한다. 그 민주당에 최근 발칙함을 무기로 ‘스냅챗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신예 정치인이 등장했다. 올해 만 28세로 6월 말 뉴욕의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 경선에서 20년 경력의 현역을 꺾고 정식 후보가 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가 주인공이다.

“투표 당일, 동네에서 10대로 보이는 아이들이 ‘막 투표했어요!’라고 말을 걸더군요. ‘몇 살이에요?’라고 물으니, 19세라는 거예요. 19세가 중간선거 본선도 아니고 경선에서 투표를 했다는 거죠!”

그녀는 경선 승리 후 한 토크쇼에 출연해 젊은층을 겨냥한 자신의 메시지가 통했다며 이렇게 자랑했다. 키워드는 파격이다. 자칭 ‘사회주의자’인 그녀에게 최저임금 인상과 의료보험 확대 주장은 기본이다. 주거는 ‘인권’이고, 공립대 학비는 무료여야 한다. 연방정부가 전 국민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세우고 있다. 재원은 법인세 인상으로 대표되는 ‘공평한 세금 부과’를 통해 마련한다는 방안이다.

오카시오코테즈가 화끈한 쇼맨십을 선보이자 ‘스냅챗 세대’는 환호했지만 기성 민주당 의원들은 선을 그었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한 지역구에서 일어난 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민주당 부통령 후보를 지낸 조지프 리버먼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정책이 너무 비주류라 오히려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리가 있는 비판이지만 ‘파격’이 대선판 관중몰이엔 제격이란 사실을 아는 반트럼프 유권자들은 진보정당 민주당의 ‘보수성’이 답답하다. 그녀의 정치적 스승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비슷한 공약으로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그의 핵심 지지 기반 역시 20대 청년들이었다. 오카시오코테즈는 샌더스의 풀뿌리 정치조직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샌더스의 코치를 받고 구현된 오카시오코테즈의 ‘배트 플립’은 ‘힙(hip)’하다. 어머니가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그녀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출마 직전까지도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스토리는 파격에 진정성을 더한다. 아직 워싱턴에서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초짜’의 행보지만 거기엔 2020년 대선 유력주자로 여전히 거론되는 그녀의 우군 샌더스뿐 아니라 민주당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른다는 징후가 보인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 여성 연방 하원의원’이란 타이틀을 일찌감치 예약해 뒀다고 평가받는 그녀를 겨냥한 위협구는 앞으로도 빗발칠 것이다. 이 모든 압박을 이겨내고 그녀가 큰 무대에서도 계속해서 금기를 깨는 ‘배트 플립’을 선보일 수 있을까.
 
한기재 국제부 기자 record@donga.com
#민주당#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스냅챗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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