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투란도트’ 속 대중, 지금과는 다르다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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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모 푸치니(사진)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1926년 초연)에서 작곡가와 대본작가들은 예전에 없던 배역을 창조했습니다. ‘군중(Popolo)’입니다.

물론 거의 모든 오페라에 합창이 나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산적들’ ‘뱃사람들’ 등 장면에 맞춰 다양한 역할을 맡을 뿐이지, ‘군중’이라는 한 가지 역할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투란도트’ 속의 ‘군중’은 어떤 캐릭터일까요. 그들은 지배자들에게 핍박과 고통을 받습니다. 명령 한마디로 잠을 박탈당하며 죽음의 위협까지 받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는 이에게 꿈을 투사하고 성원을 보냅니다. 투란도트 공주의 수수께끼 풀기에 도전한 남자 주인공 칼라프를 응원할 때 그렇습니다. 그러다가도, 공통의 희생제물을 찾으면 한순간에 지배자 편에 서서 함께 박해자가 됩니다.

한마디로 이 ‘군중’은, 쉽게 변하며 쉽게 조종당하는 존재입니다. 왜 이렇게 그려졌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중’ 또는 ‘대중’은 냉전 중인 양 체제에서 공통적으로 긍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는 달랐습니다.

파시스트들과 나치는 민중이 가진 힘에 주목하고 그들의 조직화에 큰 힘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민중이 쉽게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정치철학은 소수 엘리트의 과두정(oligarchy)이었습니다.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도 1930년 발표한 ‘대중의 반란(La rebeli´on de las masas)’에서 수동적이며 비인격적인 대중이 사회적으로 힘을 얻는 데 경계심을 표현합니다. 즉, ‘투란도트’에 묘사된 대중은 그 시대에 인식된 전형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대중’이란 관념은 이보다 훨씬 긍정적인 가치를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투란도트’와 오르테가이가세트가 경고한, ‘쉽게 조종당하며, 억압에 동참하는 대중’은 사라진 것일까요?

서울시오페라단은 26∼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푸치니 ‘투란도트’를 공연합니다. 투란도트 역에 소프라노 이화영 김라희, 류 역에 소프라노 서선영 신은혜, 칼라프 역에 테너 한윤석 박지응이 출연합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투란도트#자코모 푸치니#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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