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美 슈퍼매파 vs 中 대미경제통… 앞에선 무역전쟁, 뒤에선 협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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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에 선 양국 ‘장수’들 분석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신(新)냉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미중 무역전쟁에 나선 ‘장수’들의 현재 움직임과 면면으로 볼 때 파국 전에 극적으로 타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미국의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중국의 류허(劉鶴) 부총리와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측이 지난주 류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 △미국산 자동차에 대한 중국 관세 인하 △중국의 미국산 반도체 구매 확대 △미국 기업의 중국 금융 분야 진출 확대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백악관 경제팀과 외교안보팀을 뼛속까지 자신의 대선 슬로건인 ‘미국 우선주의’를 실천한 보호무역주의자와 ‘슈퍼 보수매파’로 ‘전시 내각’을 구성했다. 이에 맞서는 중국의 경제팀과 외교안보팀은 미국과 협상 경험이 풍부한 미국통과 경제통들로 꾸려졌다. 중국이 “전쟁이 일어나면 끝까지 싸우겠다”면서도 무역전쟁을 최대한 피하려는 정책을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는 23일 미국의 관세 폭탄에 대응하는 조치를 발표하면서 미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의 구체적인 시점을 거론하지 않았다. BBC 중문판은 “미국에 정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대두와 수수 등 농산품을 관세 부과 목록에서 유보한 건 협상할 여지를 남긴 것”이라고 분석했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므누신 장관이 무역문제 협상을 위해 방중할 가능성이 제기된 데 대해 “대화와 협상의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다”며 반겼다.

○ 대미 경제통으로 짜인 시진핑의 방패

이런 분석이 나오는 데는 이달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한국의 국회 격)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외교사령탑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 차르’ 류 부총리가 있기 때문이다.

왕 부주석은 2008∼2012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시절 부총리를 맡아 수차례 미중 경제대화를 이끌었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이해와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2012∼2017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1기에서 반(反)부패 선봉장 역할을 맡았지만 사실 그는 칭화(淸華)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중국 중앙은행인 런민(人民)은행 부행장 등을 지낸 경제통이다. 부총리 시절 협상 상대였던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 출신 헨리 폴슨 전 미 재무장관은 회고록에서 왕 부주석에 대해 “중국 경제 관료 가운데 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고 명민했다”고 표현했다.

류 부총리는 미중 무역전쟁 국면에서 실질적인 물밑 협상을 진행하는 핵심 인물이다. 양국을 잇는 가장 중요한 고리를 맡고 있는 그는 미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출신이며, 국제화된 시각을 갖고 있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에 대한 반격의 행동대장을 맡고 있는 중산(鐘山) 상무부장은 상무부 부부장과 국제무역협상대표를 거친 통상교섭통이다.

이 때문인지 중국 관차저왕(觀察者網)은 “1991∼2010년 5차례 무역전쟁이 있었으나 모두 1년 안에 화해로 끝났다”며 이번에도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인생동지(왕치산), 친구(류허), 측근 부하(중산)로 얽힌 시 주석 측근 그룹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시 주석의 강경 노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무역보호주의 트럼프 칼이 향한 곳은

류 부총리와 물밑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므누신 장관은 25일 ‘폭스뉴스 선데이’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면서도 “중국과 생산적인 대화를 하고 있으며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제기와 중국 기업의 미 정보기술(IT) 기업 인수합병 관련 관리감독 규제를 신설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은 중국시장 개방, 지식재산권 보호를 확보하려는 협상 카드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의 유력 경제 매체 차이신(財新)은 “미중은 (결국) 경제 대화를 열 것이며 (지재권 등에서 합의가 이뤄지면) 관세 등 위협과 제재는 연기되거나 취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미 백악관과 행정부에 포진한 ‘장수’들의 면면으로 볼 때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 압력이 빠른 시간 안에 완화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슈퍼 매파’로 불리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새로운 국가안보 전략의 사령탑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보다 더 광범위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볼턴은 25일 뉴욕의 라디오 방송 AM970 인터뷰에서 미국이 중국에 부과한 관세에 대해 “중국은 미국 및 다른 나라들과 맺고 있는 무역협정을 너무 오랫동안 이용해왔다”고 지적했다.

중국과의 통상전쟁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과 윌버 로스 상무장관, 라이트하이저 대표의 ‘보호무역 삼각 편대’가 이끌고 있다. 특히 나바로 국장은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어바인) 교수로 재직 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이라는 책까지 펴내며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미국의 무역 불균형을 강하게 비판한 이론가이자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다. 지난해 8월 중국이 철강 보복 관세를 피하기 위해 철강 생산량 축소를 제안했을 때에도 로스 장관은 동의했지만 나바로 국장은 반대하며 관세 부과를 고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로스차일드 회장을 지낸 월가 출신의 로스 장관은 지난해 1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중국을 ‘가장 보호무역주의가 강한 나라’ ‘악의적인 무역행위’라고 맹비난하며 통상전쟁의 최후통첩을 보냈던 인물이다. 이런 로스 장관도 “결국에는 협상을 통한 타결로 끝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래리 커들로 신임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자유무역주의자이지만 중국에 대한 무역 보복은 정당화했다. 무역전쟁의 총대는 라이트하이저 대표가 멨다. 그는 21일 미 하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에 (무역정책상의) ‘최대의 압박’을 가하겠다”고 밝혔다. USTR는 15일 안에 1300개 중국산 품목 중 관세 대상 품목을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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