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시진핑-마크롱 “우린 썸타는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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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영국-독일 향한 중국의 엇갈린 ‘애정전선’

《 “새해 들어 첫 번째 중국 국빈 방문국이 프랑스라는 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후 첫 아시아 방문국이 중국이라는 점은 매우 뜻깊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9일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프랑스를 한껏 치켜세우며 “양국이 사회 체제나 발전 단계, 문화 차이를 초월해 협력해야 한다”고 구애를 했다. 정상회담 후에는 자금성을 직접 안내했다. 지난해 11월 중국을 방문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맞먹는 예우다. 교역 규모 순위로 따지면 유럽에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가장 먼저 중국을 방문해야 하지만 중국은 마크롱 대통령을 우선 택했다. 메이 총리는 이달 말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지만 아직 일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최근 10년 동안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영국을 택해 왔다. 2000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연합(EU) 28개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FDI)는 영국이 압도적 1위. 그러나 2016년 6월 영국이 예상치 못하게 EU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중국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시 주석이 아시아와 유럽을 잇기 위해 야심 차게 추진 중인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위해 중국의 유럽 진출은 필수다. 유럽 각국도 중국의 투자가 달콤하지만 중국의 무분별한 자국 기업 인수에 대한 경계가 점점 커지고 있다. 유럽의 3대 강국인 영국 프랑스 독일과 중국 간의 관계 전선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
 

○ “밀당 시작됐다”

佛 마크롱 “일대일로 참여” “패권은 안 돼” 냉온탕… 시진핑 “사회체제-문화차이 초월해 협력” 구애

마크롱 대통령은 9일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이번 방중이 양국 관계의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일대일로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올해 신년사에서 그는 “중국과 미국에 맞서기 위해 유럽은 더 강해져야 한다”며 경계의 뜻도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영국에 대한 중국의 애정이 식고 독일과의 마찰이 커지면서 중국의 마음은 점점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

중국은 이번 마크롱 대통령 방문을 계기로 중국 온라인 소매업 제이디닷컴이 향후 2년 동안 중국 소비자들에게 고가 와인과 코냑을 포함해 20억 유로어치의 프랑스 상품을 팔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프랑스 에어버스 여객기 100여 대를 팔아주는 선물도 안겼다.

그러나 중국을 향한 마크롱 대통령의 마음은 복잡하다.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해 적극 참여를 약속하면서도 “중국이 이 프로젝트로 새로운 헤게모니를 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셈이다.

무역 분야에서는 독일과 발맞추며 중국을 앞장서서 견제하고 있다. 중국의 무분별한 기업 인수에 제동을 거는 EU의 각종 규제책을 만드는 데 가장 앞장서는 게 마크롱 대통령이다. 중국이 프랑스의 최대 무역 적자국(연간 300억 유로 규모)이라는 점도 마크롱 대통령이 신경 쓰는 대목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 50개의 협력 대상에 원전과 우주 항공 산업 등 프랑스의 핵심 전략산업을 포함시키고 “최소한 1년에 한 번 중국에 오겠다”고 말했다. 경계하면서도 중국에 한 걸음 다가간 것만은 분명하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번 달 말 중국을 방문해 브렉시트 이후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논의할 계획이다. 사진은 2016년 메이 총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동아일보DB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번 달 말 중국을 방문해 브렉시트 이후 중국과의 협력 확대를 논의할 계획이다. 사진은 2016년 메이 총리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동아일보DB
○ “사랑이 식었어”

中 “브렉시트로 英유럽 진출 교두보 매력 떨어져” 다급한 메이 “투자유치” 1월 대규모 사절단과 방중

“우리는 계속 국가의 문을 열어둘 것이며 외국의 투자를 환영합니다.”

리엄 폭스 영국 국제통상장관은 지난주 중국을 방문해 투자 및 교역 확대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이에 앞서 미국이 중국 알리바바의 금융 관계사 앤트파이낸셜의 미국 머니그램 12억 달러 인수 계획을 국가 안보를 이유로 불허했지만 영국은 그와 반대되는 메시지를 중국에 던진 셈이다. 영국은 호주와 미국 등지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불허한 휴대전화 제조업체 화웨이의 투자도 환영하고 나섰다.

그동안 중국은 영국을 유럽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구애를 계속해 왔지만 최근 주도권이 뒤바뀌었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으로 유럽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매력도가 떨어진 반면 영국은 양자무역 관계에서 중국의 중요도가 더욱 커졌다. 폭스 장관은 지난해 노골적으로 “미국 다음 우리의 타깃은 중국”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국은 런던 금융가 부동산, 주요 국영기업은 물론 프리미어리그 축구 클럽도 두 개나 갖고 있을 정도로 영국에 깊숙이 진출해 있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 구상 역시 지난해 4월 중국 화물열차가 영국의 에식스 터미널을 떠나 7500마일을 달려 중국에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시동을 걸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내 외국 투자가 휘청거렸지만 2016년 중국은 전년(2015년)보다 두 배 많은 111억5000만 파운드를 영국에 투자했다. 이달 내 메이 총리는 대규모 경제사절단과 함께 베이징을 방문해 브렉시트 이후 협력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케리 브라운 교수는 “중국이 (영국에) EU나 미국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의 무분별한 독일 기업 인수와 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들이 겪는 차별 때문에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사진은 2016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동아일보DB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중국의 무분별한 독일 기업 인수와 중국에 진출한 독일 기업들이 겪는 차별 때문에 중국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사진은 2016년 G20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습. 동아일보DB
○ “나 스토커 아냐”

4차산업혁명 선두이자 제조업 강자 독일 ‘짝사랑’ 獨은 中의 문어발 기업 인수에 “더는 못 참겠다”

“이럴 바에야 아예 중국에서 철수를 검토하겠습니다.”

주중국 독일 상공회의소는 지난해 11월 중국 공산당이 외국기업 내 당 조직을 확대하자 “더 이상 못 참겠다”며 철수 엄포를 놓았다. 중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기업 중 10만6000여 곳에 중국 공산당 조직이 설치돼 외국 기업을 감시하고 있다. 미하엘 클라우스 주중 독일대사는 최근 “중국 정부가 중국에 진출한 독일 회사를 복잡한 행정조치로 괴롭히고, 중국 기업들의 지식재산은 과도하게 보호받는 차별과 방해가 극심하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중국이 유럽에서 가장 친해지고 싶은 이상형 국가는 독일이다. 4차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이자 제조업의 강자인 독일은 중국의 롤 모델이다. 그러나 독일 정부는 최근 중국 국영기업이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독일 업체 코테사를 1억∼2억 유로를 들여 인수하려던 시도를 중단시켰다. 코테사의 기술을 빼내 중국의 국영 항공기 제조사인 중국상용기유한책임공사(COMAC)에 쓰려 한다는 의심 때문이다.

중국이 2016년 독일의 로봇 그룹 쿠카를 인수한 이후 독일은 대중국 견제에 더 바짝 나섰다. 지난해 7월 외국인의 독일 주식 25% 이상 인수를 금지시킬 수 있는 분야를 인프라 사업으로 확장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동안에는 공공질서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가해지는 경우로 국한하고 있었다. 전력이나 수도, 병원 교통, 하이테크 기업까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는 중국의 무차별 독일 기업 인수에 제동을 걸 수 있도록 법적 토대를 만든 셈이다.

그러나 독일 기업들은 중국의 달콤한 투자가 아쉽다. 외르크 휘스켄 코테사 창업자는 “펀딩 투자가들 중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인정해준 유일한 곳이 중국이었다”고 말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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