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35>발음인가, 의미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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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 텔레비전 vs 텔레비젼

고쳐 vs 고처

 
“텔레비전 고쳐요.” 여기서 이상한 점이 없는가? 의문이 없어 보이는 데서 의문을 발견하는 것, 여기서 정확한 이해가 생기는 일이 많다. ‘텔레비전’의 ‘전’과 ‘고쳐요’의 ‘쳐’는 같은 원리로 발음되는데도 달리 표기해야 한다. 도대체 무슨 말일까. ‘텔레비전’의 표기 원리부터 살펴보자.

텔레비젼, 쥬스, 아마츄어, 비쥬얼, 스케쥴, 쵸크, 쵸콜릿, 벤쳐

모두 잘못된 표기다. 이를 수정하면 아래와 같다.

텔레비전, 주스, 아마추어, 비주얼, 스케줄, 초크, 초콜릿, 벤처
 
누군가는 올바른 표기가 더 어색할 수도 있다. 한 번쯤은 혼동할 수 있는 표기라는 의미다. ‘ㅑ, ㅕ, ㅛ, ㅠ’를 반영해야 원어와 더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왜 ‘쟈, 져, 죠, 쥬, 챠, 쳐, 쵸, 츄’가 아니라 ‘자, 저, 조, 주, 차, 처, 초, 추’로 적어야 한다는 것일까. 좀 더 간단히 요약해 보자. ‘ㅈ, (ㅉ), ㅊ’ 뒤에 ‘ㅑ, ㅕ, ㅛ, ㅠ’를 적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의 발음 때문이다. 현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ㅈ, ㅉ, ㅊ’ 뒤에 ‘ㅑ, ㅕ, ㅛ, ㅠ’를 발음하지 못한다. ‘텔레비젼’이라 발음하지 못하고 ‘텔레비전’이라고만 발음한다는 의미다. 소리가 구분되지 않으니 이를 구분해 적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말소리의 원리는 외래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역시 현대 한국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어떤 소리든 ‘ㅈ, ㅉ, ㅊ’ 뒤에 ‘ㅑ, ㅕ, ㅛ, ㅠ’를 연결해 발음하지 못한다. ‘ㅑ, ㅕ, ㅛ, ㅠ’를 ‘ㅏ, ㅓ, ㅗ, ㅜ’로 바꿔야만 ‘ㅈ, ㅊ, ㅉ’ 뒤에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맨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텔레비전 고쳐요.” ‘고쳐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가? 말소리의 원리에 따른다면 ‘고쳐’는 ‘고처’로만 발음된다. 그렇게 발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만 발음한다. 그런데 왜 ‘고처요’(×)라 적지 않는 것일까. 의미 때문이다. ‘고쳐요’는 ‘고치-’에 ‘-어요’가 붙은 말이다. 즉, ‘고치어’가 ‘고쳐’로 줄어든 것이다. 이를 소리 나는 대로 ‘고처요’(×)라고 적으면 ‘고치+어’의 의미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아래 예들은 모두 같은 이유로 ‘ㅈ, ㅉ, ㅊ’ 뒤에 ‘ㅕ’를 밝혀 적은 것들이다.

지-+-어→져[저]
가지-+-어→가져[가저]
다치-+-어→다쳐[다처]
마치-+-어→마쳐[마처]
찌-+-어→쪄[쩌]

 
왜 ‘ㅈ, ㅉ, ㅊ’ 뒤에 ‘ㅑ, ㅕ, ㅛ, ㅠ’가 연결되지 못할까. 이를 설명하는 것은 국어학자들의 몫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맞춤법 원리에 ‘우리의 실제 발음’과 ‘우리의 의미 구분’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의미 구분을 위해 ‘고쳐’라 적지만 실제로는 ‘고처’라 발음하는 우리 스스로를 발견해야 ‘텔레비전’과 ‘고쳐’에 반영된 말의 원리와 표기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그 이해를 더 넓힐 수 있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텔레비전#주스#아마추어#비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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