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오페라 주역이 갑자기 ‘펑크’ 낸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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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습니다. 19세기 초의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였던 벨리니의 고향,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서 식당에 들렀습니다. 갑자기 몰려든 동양인들에게 주인아저씨가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로 왔느냐?’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오페라 팬들이라고 했더니 그의 눈이 빛났습니다.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를 아세요?” “그럼요, 서울에서 저와 저녁도 함께 먹었는데요.”

식당 아저씨 포르투나토 씨는 내실로 들어가 스크랩북을 가져왔습니다. 2011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테너 리치트라의 간(肝)이 자신에게 이식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리치트라는 200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남주인공 카바라도시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감기로 공연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긴급 투입되어 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끌면서 깜짝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9년 뒤 고향 근처인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고, 뇌사에 빠진 그의 몸은 일곱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리치트라의 예에서 보듯 오페라 주역가수가 컨디션 이상으로 공연을 취소하면 새로운 스타에게 기회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달 28일 제가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마주친 상황은 이와 달랐습니다.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에 없이 극장 관계자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에 섰습니다. “여성 주역 엘리자베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크리스틴 루이스가 몸의 이상으로 갑자기 출연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입장권은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엘리자베타가 안 나오는 장면들로 90분 하이라이트 공연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나름대로 일행에게는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쉬움도 남았지만 수준 높은 공짜 공연을 즐겼고, 중간 휴식까지 4시간 반이라는 일말의 부담감도 줄였고, 남는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냈으니까요.

저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이 같은 예상하지 못한 일화들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8월 4∼12일에는 유럽 양대 야외오페라 축제인 브레겐츠와 베로나 오페라축제를 보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고향도 둘러보게 됩니다. 같이 가실 분? tourdonga.com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오페라 토스카#루치아노 파바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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