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의 오 나의 키친]‘노마’ 셰프도 감탄한 두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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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아침 식사로 흔히 먹는 간장 얹은 두부.
일본에서 아침 식사로 흔히 먹는 간장 얹은 두부.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엄마는 플라스틱 통과 동전 몇 개를 주고 아침 식사에 쓸 두부를 사오게 했다. 전등불이 켜진 두부가게에서는 가마솥 열기로 연기가 구름처럼 뿜어져 나오곤 했다. 장작이 툭툭거리며 타고 있었고, 콩을 삶으면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가게를 가득 채웠다. 어떤 날은 두부가게 할아버지가 간수를 넣을 때까지 쪼그리고 앉아 기다려야 했다.

그때 내가 산 두부는 따뜻한 물에 섞인 부드러운 하얀 액체였는데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 두부를 사다가 식기 전 집에 도착해 아무 양념도 넣지 않고 그대로 먹었다.

일본인의 식생활에는 종교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도겐 스님(1200∼1253)은 선불교를 창시하고, 중국으로부터 사찰음식이라 불리는 쇼진(精進)요리(일본의 사찰요리)를 선보였다. 콩을 주재료로 미소(일본식 된장)와 두부, 유바(두부껍질), 유부 등을 버섯, 무, 우엉 등과 곁들이는 채식이다.

쇼진요리는 메뉴 이름이 꿩, 사슴, 기러기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고기를 탐했던 속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이었으며, 고기 같은 질감과 맛을 내기 위한 흔적이 남아 있다. 당시 요리법은 많은 요리사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환상의 요리(또는 지옥냄비)’라 불렸던 상상의 미꾸라지 두부요리가 있다. 물을 냄비에 넣고 끓이다가 산 미꾸라지와 찬 두부를 넣어 뚜껑을 덮는다. 열기를 피해 미꾸라지가 두부 속으로 숨어 겉은 두부이나 속에는 미꾸라지가 들어 있는 요리다. 오랫동안 수많은 요리사가 재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미꾸라지가 냄비에서 튀어나오고 두부에 들어가기도 전에 죽어 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TV 프로에서 직접 만들면서 밝혀낸 이 요리의 진실은 순두부를 만들어 미꾸라지 익힌 것과 섞어 두부판에 담아 완성한 것으로 결론 냈다.

두부는 에도시대 초기까지 고급 음식으로 쇼군의 식탁에 오른 음식이었다.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재위 1623∼1651년) 시대에는 일반인에게는 만들고 먹는 것이 모두 금지된 음식이었다가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도쿄, 오사카, 교토 등 대도시의 특별한 행사 때에만 먹을 수 있게 됐다.

두부가 대중화된 계기는 1782년 ‘100가지 두부요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부터다. 그 후 100가지 시리즈는 달걀, 무, 도미, 감자로 발전됐다.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의해 유명해진 ‘모리카’라는 두부 집에서 만든 두부는 두 조각에 410엔에 판매되기도 한다. 교토의 따뜻한 두부요리 코스는 한국 돈으로 3만 원 정도인데 나는 이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노르딕 레스토랑 ‘노마’의 오너 셰프는 교토 가이세키 코스에 있는 따뜻한 두부와 유자 미소는 잊을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요리라고 말한다.

교토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이것이 오래된 전통 가옥의 다다미방과 아름다운 정원, 기모노와 예의를 갖춘 서비스 등 단지 요리만이 아닌 역사와 전통이 어우러진 가격이다. 체험이라고 생각한다면 30만 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인이 맛있는 두부를 먹기 위해 가는 저렴한 식당은 따로 있다.

교토는 부드러운 두부로 유명한 지역이다. 내가 먹고 자란 오키나와 두부는 어쩌다 떨어 뜨려도 형태가 변하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그래서 오키나와는 두부와 같이 볶은 요리가 많다. 고야나 스팸, 달걀 등을 같이 넣고 볶아도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두부를 가장 많이 먹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찬 두부를 냉장고에 보관했다 파는 다른 지역과 달리 따뜻한 두부를 파는 오키나와의 슈퍼마켓에 가면 두부가 나오는 시간에 맞춰 줄 서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마치 새벽에 바게트를 기다리는 파리지앵과 똑같은 모습이다.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책 1편에서 주인공 시로는 “와인과 두부는 들고 다니지 말라”고 말한다. 일단 오픈하면 되도록 빨리 먹어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이유이다. 맛으로 느끼는 시간 예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두부#일본 아침 식사#100가지 두부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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