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무 오 나의 키친]게, 최고의 식재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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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여름 방학이 되면 나는 동생과 그물로 된 통발을 메고 아침 일찍 항구에 나갔다. 전날 생선 내장을 4개의 통발 안에 묶어 바다에 넣어 두었던 것을 끌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는 것이다. 밧줄을 끌어올리면 게가 그물 안에서 거품을 내며 울고 있었다. 몇 마리가 달랑 잡히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꽤 많은 양이 잡혔다. 난 그때 겨우 열한 살이었고 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양동이에 담고 동생과 왼손, 오른손으로 바꿔 들며 집에까지 가는 건 시간이 한참 걸렸다. 엄마는 많은 양의 게를 잡아 오는 우리를 보고 어떻게 가져왔는지 항상 놀라워하셨지만 생선 내장만 듬뿍 달아 놓으면 게는 쉽게 통 안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게들을 삶거나 찐 다음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었다. 실컷 먹고 남은 게는 살을 발라내어 국물과 함께 섞어 죽을 만들어 주셨다. 너무 맛있어서 서로 더 먹겠다고 우리 형제는 싸우곤 했다.

어린 시절 여름에 대한 기억은 오키나와 해변과 태양의 열기로 가득 차 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서 매일 해변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어느 날, 몇몇 아이들이 시커먼 나에게 아빠가 흑인인지 물었다.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많이 속상해하시면서 다시는 바다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다.

게는 세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이다. 사실 까기가 힘들지만 맛만을 따지면 최고의 식재료라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요리에 인기 있는 종은 털게, 왕게, 대게, 꽃게 4종이다. 이 중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꽃게는 세계 생산량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주로 한국, 일본, 중국의 바다에서 잡힌다.

1990년대 내가 거주했던 뉴욕의 차이나타운에서는 꽃게를 광주리에 쌓아 놓고 팔았다. 12마리를 2달러 정도에 팔았지만 비싸도 5달러를 넘지 않았다. 생것으로 팔 때에는 살아 움직이는 게만 팔 수 있어서 집게로 잡아 확인한 후 종이 봉지에 담아 준다.

뉴욕의 차이나타운에는 중국 음식점뿐만 아니라 베트남, 태국 등의 전통 음식점도 몇 군데 있다. 블랙빈 소스나 매콤한 맛의 홍콩식 게 요리를 잊을 수 없다.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칠리 크랩과 페퍼 크랩, 베트남의 크랩 스프링롤 등을 좋아한다. 미국인들은 한입에 먹기 쉬운 크랩 케이크나 오믈렛 등을 좋아한다.

게살로 만든 샐러드. 게는 튀김,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맛볼 수 있다.
게살로 만든 샐러드. 게는 튀김,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맛볼 수 있다.
식당에 공급되는 게는 이미 껍질과 분리돼 쉽게 조리가 가능한 상태로 냉장 살균된 것이 주로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비스크 소스나 프렌치 버전 요리의 깊은 맛을 낼 때 껍질을 볶아 사용한다. 채소와 허브들을 같이 넣어 끓이다 보면 진한 향이 주방을 넘어 홀까지 퍼진다. 서양 요리의 핵심은 그 재료가 가진 최고의 맛을 뽑아내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설 때 냄새만으로도 그 레스토랑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모던 요리의 대표주자 헤스턴 블루먼솔은 ‘게 아이스크림’을 개발했다. 아이스크림이란 선입관 때문인지 손님들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얼린 게소스’로 이름만 바꿨다고 한다. 그 후 손님들의 찬사를 받으며 더 유명해졌다.

늦은 봄부터 이른 봄까지 나오는 소프트셸 크랩은 뉴욕의 많은 레스토랑에서 흔히 먹을 수 있는 메뉴다. 버터에 지져 레몬즙과 다진 파슬리를 뿌려내면 프랑스식, 파스타와 곁들이면 이탈리아식, 튀긴 후 스시롤을 만들면 일본식이 된다. 사실 이 게들은 작은 껍질을 허물처럼 벗어내고 더 크게 자라기 위해 준비하는 동안 잡기 때문에 부드러운 껍질까지 통으로 먹을 수 있다.

가장 맛있는 조리법은 뜨거운 기름을 튀기거나 팬에 지져내는 것이다. 이 게들은 수분이 많아 특히 튀길 때 조심해야 한다. 기름이 튀거나, 몸통이 터져 산산조각이 나 손과 얼굴까지도 튈 수 있기 때문이다. 큰 냄비 뚜껑을 준비해 방패처럼 사용하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요리 중 하나는 간장게장이다. 나는 여전히 그 첫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이 나는 게살에 노란 알과 내장이 품어주는 환상의 맛, 이런 맛을 일본어로 “우마미”라 표현한다. 갓 지어낸 뽀얀 쌀밥에 섞어 비벼 먹었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맛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몰라도 나는 ‘첫 키스’ 같은 맛으로 오늘날까지 기억하고 있다.
 
요나구니 스스무 일본 출신 ‘오 키친’ 셰프
#게살#최고의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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