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읽지 않는 책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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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책을 많이 인쇄하여 그저 높은 시렁에 두기만 하고 읽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창문이나 벽을 바르는 것만 못하다

但多印書冊 置之高架不讀 則莫若塗窓壁之爲愈也

단다인서책 치지고가부독 즉막약도창벽지위유야 ―백광훈 ‘옥봉집(玉峯集)’


예부터 책과 독서는 지식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독서량이 얼마나 되느냐와 장서가 얼마나 많은가가 그의 지식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소장하고 있는 책이 많다는 것은 그의 독서량이 그만큼 많다는 것의 방증이어야 하는데 실제에서는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연구자들이 자신의 개인 공간이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 정리이다. 책의 홍수 속에서 서가를 채우는 일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간혹 서가의 공간이 남으면 남의 이목을 의식하여 그럴싸한 책으로 추가 장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책이라는 것은 물리적 형체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 형체 속에 담긴 내용이 보다 본질적인 의미라 하겠다. 도서관에 꽂혀 대중의 열람이 가능한 책은 후자의 의미를 반영하고 있지만, 지하서고에 보관되어 열람이 통제된다거나 박물관의 유리 안에 전시되어 열람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이런 기능을 구현하지 못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책에 대한 겸사(謙辭)로 예전에는 ‘장독의 덮개’라고 하였고, 요즘에는 다소 변하여 ‘냄비 받침’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는 볼만한 내용이 없는 종이 뭉치에 불과하여 쓰임새가 덮개나 받침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겸사가 실상이 되어, 실제 냄비 받침으로 유용하게 사용되는 책도 있고 가구의 수평을 맞추기 위한 받침대로 사용되는 책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사물에는 저마다의 이름이 있다. 이름이란 그 사물의 성격과 기능을 규정하는 것인데, 그 사물이 이름에 걸맞은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 그 이름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다 읽은 책을 헌책방에 팔 때와 고물상에 팔 때에 매겨지는 값이 어떠한지를 생각해보면 그 의미가 절로 명확해질 것이다.

백광훈(白光勳·1537∼1582)의 본관은 해미(海美), 호는 옥봉(玉峯)이다. 벼슬에는 큰 뜻을 두지는 않았으며, 문인으로 명성을 날렸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백광훈#옥봉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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