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새누리당 문제의 뿌리는 不姙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9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제균 논설위원
박제균 논설위원
불임(不姙). 새누리당의 갈팡질팡은 여기서 출발한다. 친박(친박근혜) 핵심이라는 사람들이 임기 2년도 안 남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막장 공천을 저지른 것도, 혁신세력이 대통령과 차별화할까 봐 회의 소집마저 무산시키는 난장을 치는 것도 당에 ‘세자(世子)’, 또는 세자 후보군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세자’ 후보군 안 보여

대선 1년 7개월을 앞두고 이런 적은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노태우가, 노태우 때는 김영삼이, 김영삼 때는 이회창을 비롯한 ‘9룡’이, 김대중 때는 이회창이, 노무현 때는 이명박 박근혜가, 이명박 때는 박근혜가 있었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는 현재권력인 대통령과 미래권력인 대선후보가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며 당을 역동시키는 에너지를 창출한다. 지금은 미래권력이 안 보이니까 현재권력이 여전히 강한 구심력을 유지한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후반까지 박 대통령 못지않은 고정표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당을 장악하진 못했다.

적어도 야권에는 문재인 안철수처럼 가시권에 든 대선후보군이 있다. 여당에서 가시권 대선주자였던 김무성은 ‘옥새 들고 나르샤’ 사건 이후 보수 지지층에서 찬밥 대접을 받는다. 오세훈 김문수 같은 잠재 후보군은 총선에서 떨어졌다. 유승민 의원은 지도자라기보다는 평론가 인상이고,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오렌지족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현재권력이 영원할 줄 착각하는 친박에선 “비박(비박근혜)은 당을 나가주면 좋겠다”는 오만한 소리까지 나온다. 비박이라야 ‘웰빙 새누리당’ 안에서 커온 사람들이라 나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차제에 이런 질문은 던지고 싶다. 보수정당은 왜 50년 동안 같아야만 하나?

1963년 창당된 박정희 대통령의 민주공화당부터 민주정의당과 신한국당, 한나라당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만든 새누리당까지 모두 그 뿌리가 같다. 김종필의 자유민주연합, 정주영의 국민당 같은 보수 색채를 띤 당도 있었다. 하지만 특정 지역과 금력에 치우친 정당이어서 정통 보수정당이라고 하긴 어렵다. 보수정당이 하나니까 꿈도 다른 언어로 꿀 것 같은,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한 그릇에 들어가 지지고 볶으며 ‘잡탕 정당’ 소리를 듣는다.

한 가지 반찬만 골라야 하는 보수성향 유권자도 지쳤다.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수도권 지역구에서 15%의 득표율을 올리고 비례대표 13석을 차지한 것도 보수 유권자가 고를 수 있는 ‘유사 보수’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야권은 분당(分黨)하면서 오히려 정치가 정상화되는 형국이다. 제3당인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것은 대화와 타협을 증진한다는 면에서 바람직하다. 탈당 사태 이후 남은 친노·운동권 세력은 위기감 때문에 김종인 대표를 영입해 적어도 겉으로는 변화의 몸짓을 보인다.

보수정당은 50년 같아야 하나

보수라고 못할 일인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갈라서서 서로 다른 정체성으로 경쟁하면 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영입하든, 자체 후보를 세우든 각각의 대선후보를 만들어보라. 필요하다면 대선을 앞두고 보수후보 단일화를 할 수도 있다. 우파 또는 좌파 정당들이 힘을 합쳐 집권한 후 연정을 하는 것은 유럽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30년 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개헌이 어렵다면 정계개편을 통해서라도 정치의 판을 확 바꿀 필요가 있다. 그만큼 한국정치는 골병들었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새누리당#불임#세자 후보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