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 음악상담실]유행가가 의식(儀式)이 되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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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벌써 벚꽃이 흩어져 내립니다.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를 끄집어내는 마력을 지닌 4월 초의 마력이 이렇게 끝나갑니다.

저는 음악방송 DJ를 하는데, 이맘때 가장 많이 신청을 받는 노래가 오늘 소개하는 ‘벚꽃 엔딩’입니다. 잘 안 틀어줍니다.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니까요. 하지만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이 노래는 이제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봄의 의식(ritual)이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캐럴처럼 봄의 ‘시즌 송’이 된 것이죠.

유행은 남을 모방하는 것입니다. 사회적인 동물이 뒤처지거나 소외되지 않으려고 생존본능을 표현하는 것이죠. 유행은 상반된 두 욕구인 동조 심리와 차별화 심리를 동시에 만족시켜줍니다. 유행을 따름으로써 소속되었다는 안도감을 얻고, 더 나아가 아직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거나 독특하다는 만족감을 얻는 것이죠.

유행은 전염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타인들에게 좋으면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고, 소속된 집단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지만 집단행동은 대부분 비합리적입니다. 물론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위험을 최소화하는 합리적인 생존방식이기도 합니다.

반면 의식은 상징적인 가치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믿어지는 언행을 하는 것입니다. 주로 공동체가 함께 하죠. 의식은 주로 신앙이나 신념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되지만 사회적인 결속력과 충성도를 강화시킬 수 있고, 함께 즐거움과 정서적인 만족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불안을 감소시키거나 슬픔을 달래주기도 하죠.

의식에도 논리나 정당성은 크게 필요 없습니다. 어떤 의미 있는 이벤트를 위해 어디에 가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먹을지에 대한 결정은 전통과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의식은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습니다.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안정감을 향상시킬 수 있죠. 그만큼 인간이 불안한 존재이기 때문이죠.

이전의 노래들과는 조금 다르고 꽤 괜찮은 노래가 하나 있어서 유행을 했고, 그 노래가 대중이 즐기는 초봄 벚꽃놀이의 배경음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벚꽃이 필 때면 이 노래는 한 번쯤 들어줘야 한다는 의식이 형성되었죠.

더러는 그 의식에 흔쾌히 참여하고, 더러는 고개를 내젓습니다. 후자는 다수의 소비자가 구매하는 제품을 꺼리는 구매심리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봄이 좋냐’를 부르는 십센치처럼 천편일률적인 것을 거부하는 것이죠.

하지만 봄날을 찬양한다고 남에게 피해가 되진 않습니다. 오히려 어설픈 의식이라고 해도 기꺼이 함께 참여한다면 의도하지 않았던 긍정적인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노래의 가사에는, 너와 그대가 혼재하고, 그 대상이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고, 흩날리는 벚꽃 잎이 자장노래였다가 곧 볼륨이 커져서 울려 퍼지고, 뜬금없이 사랑 노래가 끼어들었다가 금방 사라져 버립니다. 작사법을 가르치는 교수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이 가사에 C학점을 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런 히트 곡을 쓸 수 있는 것인지 여전히 궁금합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버스커버스커#벚꽃 엔딩#시즌 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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