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최영훈]유인태 “兩金도 지금처럼 무지막지하게 공천하진 않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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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유인태 의원

유인태 의원은 41년 전 자신에게도 선고됐던 사형제도의 폐지를 위해 두 달 남은 19대 국회의원 회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유인태 의원은 41년 전 자신에게도 선고됐던 사형제도의 폐지를 위해 두 달 남은 19대 국회의원 회기 동안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경모기자 momo@donga.com
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양김(兩金·YS DJ) 때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공천하진 않았다.”

유인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는 컷오프에 걸려 20대 총선에 출마할 수 없다. 통보를 받자마자 마음의 준비라도 한 듯 바로 승복하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역시 유인태다” 소리가 당 안팎에서 나왔다. 1974년, 유신독재 반대시위가 격화되자 박정희 정권은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을 배후로 지목하고 253명을 긴급조치 4호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주모자들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유인태도 그중 한 명. 4년 5개월 복역한 뒤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4, 17, 19대 국회의원과 노무현 정권 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18일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말투를 흉내 내) 정치가 ‘×판 5분 전’이다.


“너무한다. 선거 앞두면 민심을 의식하는데 ‘×판 쳐도’ 내 표는 끄덕없다 자신하는 것 아닌가. 양김 때 그 양반들이 다 주물렀어도 눈치는 봤다. 언론에 가 귀띔하고 양해도 구했다. 대통령이 기준과 원칙도 없이 공천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김무성 대표가 약한 건가.


“글쎄, 약점이라도 잡혔는지 꼬리를 너무 내린다. 배짱 튕기고 벌써 잠적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너무 매가리 없다.”

―콘크리트 지지율을 겁내는 것 아닐까.


“이런 예가 처음이긴 하지. 그렇다고 지지자만 보고 달리는 대통령 앞에 너무 약한 모습이다.”

―‘차르 김(김종인 대표)’은 잘하고 있나.


“엉망이지. 그래도 우리 자업자득이니….”

노욕이 노추(老醜) 돼선 안돼

―이해찬 쫓아낸 건?

“거기엔 할 말이 없다.”

일부러 아픈 곳을 찔렀다. “‘무자격자’로 찍혔는데….” 의외로 담담하게 “서슬 푸른 5공화국 때 집권당 사무총장을 지낸 이춘구의 마지막이 아름다웠다”고 했다. “제천고를 다닌 인연으로 알고 지냈는데 무소속으로 나와도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런데 14대를 마지막으로 안 나왔다. 환갑 나이쯤 됐을까. 언론의 인터뷰도 일절 사절했다. 충북지사를 지낸 이원종도 그랬다. 나도 고향의 명예를 지키려 한다. 노욕(老慾)이 노추가 돼선 안 된다. 집사람이 지난 선거 때 ‘남편이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작년 가을쯤 ‘이제 그만할 거지’ 하더라. 하지만 당이 하도 ×판이어서 그만두기 어려웠다.”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은지 얘기를 이어갔다. “그때 역할을 한 중진의원이 많지 않다. 믿을 만한 중진인지의 기준은 보안을 지키느냐다. 어른 축에 드는 사람이 5, 6명 정도다. 범친노 중진이 문재인을 만나 사퇴를 권고했다. 문재인은 굴복하지 않는 모양새로 폼나게 내려놓겠다고 했다. 그게 작년 연말 때다. 그 얘기는 당 출입기자들도 몰랐다. 김종인 대표가 당 외연을 확장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콩가루 집안을 콱 잡으니까 ‘진작 그러지’ 말까지 나온다. 어쨌든 양당 구도로 선거를 치르게 한 공로는 인정한다.”

―컷오프 전에 하지 그랬나.


“20% 컷오프는 안 하기로 한 것이다. 21명 탈당하면서 이미 숫자를 채웠다. 자동응답전화(ARS) 조사는 200, 300명만 동원하면 10% 올라간다. 호남에서 경선 많이 해본 사람은 착신 전환해 둔 건수가 1000건이 넘는다. 착신 전환해 두면 지지도 올리긴 쉽다. 설계한 조국이나 김상곤이 뭘 알고 했는지….” (조국 교수가 "안심번호는 착신전환이 안된다"고 알려왔음)

의정 활동이 소홀했다는 지적엔 강하게 항변했다. “본회의, 상임위, 의총 안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의원은 왜 하냐. 나와 문희상은 거의 개근했다. 의총 안 나오는 ××는 기본이 안 된 거다. 다만 선거 체질이 아니라 지역구는 명절 아니면 안 갔다. 할 일 없이 시장이고 경로당이고 가는 게 뭐….”

―3월 3일 국회 고별인사는 자청했나.

“떠나는 마당에 이런 선거제도 갖고는 통합도 안되고 나라도 안 돌아간다, 사형제 폐지를 의원 172명이 서명해 2차례나 올렸는데 법사위에서 계속 뭉개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맞담배 피워

―당 소속 의원이 의원석에 한 명도 없었는데….


“외부 행사 갔다 왔는데, 우리 당 의원들이 의사당 로텐더홀 계단에서 테러방지법 규탄대회를 하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엽기수석, 졸음의 달인’ 별명은 왜 생겼나.

“한 기자 때문이다. 정무수석 때 기자 20여 명과 중국집에서 만났다. 하나도 안 쓸 거라고 해서 편하게 얘기했다. 그 기자가 ‘박지원 실장이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뭐라더냐’ 물어 “‘그걸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러지 뭐라 그래” 했더니 기사를 써 일이 커졌다. 그 뒤 ‘DJ와 노무현은 상고(商高) 나온 사람들이니 열심히 해야지’라고 농담한 얘기, 사형선고 받을 때 모친이 졸아 ‘모전자전’이라는 얘기, 유치원 초등학교 때 할머니에게 배워 민화투 육백 친 얘기, 그때부터 잡기가 늘어 바둑 장기도 잘 둔다는 온갖 얘기를 돌아가며 각 신문들이 일주일간 써댔다. 마지막 청남대 개방 행사 때 기자들이 버스에 탈 때 ‘사람 타는 버스에 왜 ×들을 태우냐’고 농담했다.”

―노 전 대통령과 맞담배 했다고 들었다.

“두 살 차이로 야당 같이하면서 했다. 청와대 갔다고 안 피우면 더 이상한 일이다. 정찬용은 나가서 피웠다. 그래서 ‘넌 양반이고 난 상놈이냐’ 그랬다. 문재인도 앞에서 피웠다. 후농(後農·김상현)도 DJ 앞에서 피웠다.”

―선거제도는 어떻게 바꿔야 하나.

“우리도 유럽처럼 다원화돼 있다. 다당제로 가야 한다. 3, 4당이 타협의 정치를 해야 한다. 새누리당 공천, 우리 당의 파동을 보면 당 따로 해야 할 사람들이 같이 있어 난리다. 유승민과 친박이 따로 있다면 이렇게 됐겠나. 지금 같은 지역구도와 소선거구제에선 생각이나 이념이 달라도 동거할 수밖에 없다. 유승민과 안철수가 같이하면 훨씬 건강한 당 만들 거다. 더민주당 강경파는 정의당과 하고, 새누리당도 극우에 가까운 사람끼리 정당 하나 더 만들면 된다. 전체 보수를 40% 정도로 보면 우리 쪽과 스펙트럼이 같은 중도보수가 하나의 정당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강봉균이 새누리당 선대위장 가고 하는 것 아니냐. 지금 더민주당 주류는 진보일 수밖에 없다. 현 제도로는 극단적인 쪽으로 원심력이 작용한다. 합리적 보수도 극단 보수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2004년 국가보안법 개정 협상 때 이부영 대표가 고생해 박근혜 당시 야당 대표와 타협에 성공했다. 그때 천정배 원내대표가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려 협상이 깨졌다. 오만이다. 그러나 추운 날 농성한 극단 세력의 눈치를 안 볼 도리가 없다. 그래서 통합의 정치는 요원하다. 이게 무슨 비극이냐.”

―안철수, 국민의당은 어떻게 되나.

“총선 끝나면 ‘아이고 내가 발을 잘못 들였구나’라고 할 거다. 뭘 잘 모르지 않느냐.”

―국민의당 호남 성적은….


“안철수당은 15대 민주당보다 훨씬 약체다. 이기택 김원기 노무현 이철 등이 있었지만 안철수만 한 대선주자가 없었다. 그래도 국민의당은 탈당 의원들이 절대다수여서 총선은 힘들다. 여야의 공천 작업이 끝나고 3월 말이면 3번은 안 보일 거다. 결국 1, 2번 싸움이다. 지방선거라면 얘기가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총선이다. 국민의당이 호남 쪽 강세라고 하지만 최종 결과는 초라할 것으로 본다. 수도권은 전부 1, 2번 싸움이고 3번은 앞으로 뜰 사람도 없다.”

총선 후 김종인 주도권 어림없을 것

―수도권 후보 단일화 전망은….

“이름 알리고 경험 쌓으려는 후보는 완주하고, 단일화하자는 후보도 있을 거다. 후보 나름이다.”

―‘친노 패권주의’가 당 개혁 명분이다.

“언론이 작명한 거다. 박지원도 조장한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 서거 후 추모를 주도한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싸가지가 없다. 이해찬 명계남…. 말들을 사납게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장관 한 사람, 청와대 사람이면 다 친노인가. 지금 친노는 그거와 상관없다. 한명숙이 공천 줬던 강경파 비례들이 친노다. 86그룹 중에도 친노는 많지 않다. 그러니 ‘진보 패권’이 맞는 말이다. 문재인을 옹호하는 그룹은 10명도 안 된다.”

―총선 후에도 김종인이 주도권을 쥐나.


“어림없는 소설이다. 다만 그 양반이 역할을 하는 게 도움이 되고 사심 없이 하면 같이 갈 수 있다. 그래도 김종인이 주류가 될 수는 없다. 어쨌든 우리당은 진보가 주류다.”

―비대위 체제는 어떻게 되나.

“총선 후 전당대회를 해야지. 6, 7월쯤 전당대회를 해서 정상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

―당은 몇 석이나 얻을 것으로 보나.

“지금 의석 정도는 할 것으로 본다. 아직은 호남에서 열세다. 정의당이 최근 많이 올랐더라. 우리한테 실망한 진보 표가 거기로 갔다. 정의당 쪽과 얘기가 되면 선거구도가 한결 나아질 거다. 정의당 국민의당 후보가 모두 완주하면 매우 비관적으로 된다.”

―JP가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는데….

“‘공동체의 운명을 어디로 가져가느냐’ 키를 쥔 게 정치다. 정치가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공동체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지금 같은 정치 혐오가 계속되면 쇠락의 길밖에 없다.”

―당에 조언을 한다면….

“선거구제는 개헌과 함수관계다. 대통령제와 다당제는 맞지 않는다. 87년 군사정권 끝나면서 선거제도 설계를 잘했어야 한다. 분권형 개헌과 선거구제 개혁으로 정치에 공동체의 문제가 녹아 들어가고 타협의 정치를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경제도 살아날 수 없다. 고령화 저출산도 정치가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극단적 대결구도 청산할 수 있을까.

“새누리당이 현 선거제 혜택을 가장 많이 봤다. ‘1노 3김’으로 여소야대이던 13대 때 국회의원 인기 좋았다. 5공 청산 같은 시대의 과제를 국회가 해결했다. 그러니 의원에게 사진 찍자, 사인해 달라 했다. 지금은 물갈이해도 4년 지나면 다 그×이 그× 된다. 국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 아니라 가면 병신 되는 곳이다. 새누리당이 5, 6%밖에 표 더 얻지 못했다. 투표율 60%니 사실상 국민 4분의 1 지지다. 그런데도 100의 권력을 행사하려다 보니 비극이 생긴다.”

그는 쟁점법안과 관련해 “상임위에서 합의가 거의 이뤄져도 BH(청와대)가 개입해 간사들이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청와대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합의가 무산된 게 꽤 많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이 국회만 야단치는 것을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 탁월한 그의 재담으로 좌중은 배꼽을 잡았다. 얼마 전 부산의 당 예비후보 사무실 개소식 뒤 자갈치시장 횟집 얘기를 화제에 올렸다. “힐끗힐끗 보던 한 40대가 소주를 따르며 ‘참, 대인배십니다’라고 하더라. 자갈치시장에 무소속으로 나갈까.” 그는 “잘려서 더 유명해졌다”며 파안대소(破顔大笑)했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유인태#공천#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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