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사람보다 돈을 믿는 사회… 차가운 돈 vs 따스한 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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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 시대의 문명의 위기 가운데 하나는 사회적 신뢰는 점점 떨어지는데 돈에 대한 신뢰는 점점 높아진다는 것이다. 사람은 믿지 않고 돈만 믿는다. ―돈의 인문학(김찬호·문학과 지성사·2011년) 》

대만에서 어떤 거지가 10년 동안의 구걸로 12억 원을 모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농부였던 샤오라오다 씨가 농사를 그만두고 구걸에 뛰어든 후 이 일에서 자신의 적성을 찾았던 것. 유명해진 그는 구걸을 계속하면서도 그 방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수업을 개설하기에 이른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일 년에 목욕을 두 번 이상 하지 않는 것, 추운 날씨에 거리에서 잠을 잘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는 “이 같은 조건을 감당해야 ‘부자 거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거지가 부자”라는 역설적인 상황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란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책은 경제학적 관점으로 돈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회학을 전공한 저자는 인문학적 시선을 통해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저자는 돈이 ‘외부 세계에 있는 객관적인 제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마음과 존재에 심층적으로 얽혀 있는 에너지’라고 정의를 내린다. 돈이 이 시대에 더이상 단순히 종이나 금속 같은 물질이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의 말처럼 사람들은 시스템이 돼버린 돈 아래서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아가고, 저자가 사용한 ‘에너지’라는 표현처럼 돈에서 삶의 활기를 얻는다.

하지만 돈은 불신 속에 성장해왔기 때문에 부작용은 필연적이다. 저자는 “타인에 대한 불신이 돈에 대한 맹신을 낳는다”고 말한다. 사회적 불신이 증폭될수록 돈이 돌아가는 화폐 시스템은 더 견고해진다는 것이다. 주인 대신 돈을 맡아주고, 이를 빌려주는 은행업계의 성장사(史)를 떠올려보면 저자의 이 같은 주장이 쉽게 이해된다. 책 후반부에서 저자가 ‘미소금융’처럼 따스함이 있는 돈에 주목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커져가는 사회적 불신을 조금이나마 해소하자는 뜻이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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