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박인호의 전원생활 가이드]<41>고되지만 행복한 ‘자연인 농부’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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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올여름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키운 유기농 수박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필자가 올여름 무농약, 무화학비료로 키운 유기농 수박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엄마의 품속 같은 자연 속에서 되찾은 평온. 이 행복감이야말로 내가 속세(도시)를 버리고 전원으로 향한 이유다.’

필자가 2010년 8월 가족과 함께 강원 홍천 산골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쯤 된 시점에서 쓴 전원일기의 한 구절이다. 초기 전원생활의 만족감과 행복이 한껏 묻어난다.

‘자연과 소통하는 이는 진정한 자연인이자 자유인이다. 물질과 욕심으로 점철된 도시를 내려놓기만 하면 누구나 자연인이 될 수 있다.’(2012년 8월 H경제)

‘농업은 생명을 다루는 산업이요, 농부는 생명을 가꾸는 시인이라는 마음가짐을 견지하자. 그래야 농사를 통해서도 자연의 축복을 제대로 향유할 수 있게 된다.’(2014년 9월 동아일보)

귀농 이후 쓴 신문 칼럼에서 보듯이 필자는 예비 귀농·귀촌인들에게 자연과 하나 되어 교감하는 자연인, 생명을 가꾸는 농부의 길을 줄곧 강조해 왔다. 필자 역시도 (아직 멀었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그 길을 걷고 있다.

되돌아보니 어느덧 만 5년을 넘어섰다. 농작물로 비유하자면 이제 시골, 자연이란 토양 속에 온전히 뿌리를 내려 건강하게 생장하고 있다. 누군가 “지금도 여전히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고 답할 수 있다.

5년 전 전원행의 초심은 확고했다. 자연 속에서 친환경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하는 것, 바로 소박한 농부이자 자연인의 삶이었다.

그러나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았다. 내려놓고 또 내려놓고자 했지만 돈, 명예, 성공 등 도시적 가치가 늘 발목을 잡았다. 특히 ‘돈’이 그랬다. 4인 가족이 검소한 전원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만큼의 돈을 얻고자 했지만 귀농 초기에 농사를 지어 이를 벌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다행히 귀농·귀촌이란 시대적 흐름이 맞아떨어져 관련 글(책과 칼럼)을 쓰고, 간간이 귀농·귀촌 강의를 하며 필요한 생활비를 조달하곤 있지만 한 달에 200만 원 벌기도 빠듯하다. 이 때문에 완납한 적금을 손해보고 해약하기도 했고, ‘시간강사의 눈물’도 공감했다.

그래도 다수확 고소득 농사 등 돈에 대한 유혹은 멀리했다. 시골에 들어와 직접 듣고 보니, 돈 버는 농사에 집착할 때 (돈을 벌기도 어렵지만) 애초 꿈꿔온 온전한 ‘자연인 농부’가 되기 어렵다는 점을 깨달았다. 흔들릴 때마다 초심을 다잡았다.

무농약 무화학비료의 친환경 농사를 통한 자급자족이 우선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땅을 살리는 일이 먼저였다. 농산물 자급을 하게 되면 그만큼 생활비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일단 글쓰기와 강의 등 농외소득을 얻는 것으로 버텼다.

이렇게 만 5년에 걸쳐 유기농업과 자연농업을 오가며 땅을 살리다 보니 올 들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농)약 안 치고 키웠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라는 고추농사가 풍작을 이뤘고, ‘비료 안 주면 안 된다’는 수박도 기대 이상으로 거뒀다. 먼저 땅을 살렸더니 이제 땅이 보은하기 시작했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연의 순리대로 농사를 짓는 농부는 곧 자연인이다. 몸은 비록 고되지만 마음은 평안하다. 흙을 이해하고 작물과 대화하는 과정에서 생명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생명 에너지를 얻는다.

물론 자연인의 삶 역시도 걸림돌이 있다. 복잡한 인간관계가 특히 그렇다. 속칭 텃세로 불리는 기존 원주민과의 관계뿐 아니라 귀농·귀촌한 이들 간의 관계 또한 녹록지 않다. 안타깝지만 돈과 이해관계에 얽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갈등을 빚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전원생활이란 결국 자연과 인간이 함께하는 삶이다. 자연인은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제에서 더 많은 즐거움과 기쁨,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의 친구는 비단 지저귀는 새와 동물만이 아니다. 농사짓는 작물과 심지어 잡초조차도 친구가 될 수 있다.

2014년 귀농·귀촌 인구가 전년보다 37.5%나 급증한 4만4586가구에 이르렀다.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목가적인 전원생활부터 성공 귀농까지 그 동기와 목적 또한 다양하다.

전원생활 만 5년이 넘은 필자는 지금도 여전히 ‘자연인 농부’를 꿈꾸며 산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리고 가급적 많은 이들이 이 행복한 꿈을 함께 꾸었으면 좋겠다.

박인호 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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