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이 슬퍼한다/꽃잎 속으로 비가 차갑게 스며든다/고요히 그 마지막을 향해/여름은 몸을 떤다(…)’
헤르만 헤세의 시에,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곡을 붙인 ‘9월’을 듣고 있습니다. 가곡집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중 두 번째 곡입니다. 슈트라우스가 숨을 거둔 것은 이 곡을 쓴 1949년의 9월 8일이었습니다. 어떤 예감이 반영된 가사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월요일 전국에 내린 비를 기점으로 올가을도 그 속도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이달도 새로운 달과 임무를 교대하는군요. 이번엔 차이콥스키 ‘사계절’을 꺼내봅니다. 열두 곡으로 된 이 작품은 달마다 표제가 붙어있는 피아노곡집입니다. 10월의 제목은 ‘가을의 노래’입니다.
‘가을, 초라한 정원으로 모든 것들이 떨어져 내린다/노란 잎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레프 톨스토이의 사촌인 서정시인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시에 곡을 붙였습니다. 단 한 달 차이인데 느낌이 크게 다르죠? 헤세가 묘사한 독일의 9월은 여름이 겨우 그 마지막을 알리고 있지만 톨스토이가 그려낸 러시아의 10월은 노란 낙엽으로 가득합니다. 우리의 11월 느낌입니다.
북쪽 나라인 러시아에 추위가 유독 빨리 오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러시아가 공산혁명 이후에야 서방과 같은 그레고리력을 쓰게 된 것도 이유입니다. 차이콥스키 시절에 사용된 율리우스력은 그레고리력보다 13일 늦습니다. 지금의 10월 14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0월이 왔다’고 했던 거죠. 톨스토이와 차이콥스키가 그려낸 가을이 유독 쓸쓸한 것을 이해할 만 하죠?
이제 올해도 단 세 달이 남았군요. 쓸쓸해하고 외로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이 해의 결실을 풍요롭게 수확할 준비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요. 헤세보다 두 살 위로 종종 함께 입에 오르내리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도 ‘가을날’에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이상 집을 짓지 않습니다’라고 했던가요. 부연하자면 ‘가을날’은 생존 작곡가인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가 2005년 발표한 교향곡 8번 일부의 가사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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