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석의 詩로 여는 주말]마지막 물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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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에 그린 윤석남 씨의 작품.
너와에 그린 윤석남 씨의 작품.
마지막 물음
김광규(1941∼ )

전화기도
TV도
오디오 세트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고장나면
고쳐서 쓰기보다
버리고
새로 사라고 합니다
그것이 더 싸다고 합니다

사람도 요즘은 이와 다를 바
없다고 하더군요

우리의 가정도
도시도
일터도
나라도
이 세계도……그렇다면
고칠 수 없나요
버려야 하나요

하나뿐인 나 자신도
버리고
새로 살 수 있나요


추석 연휴가 끝나니 남은 음식 재활용법이 TV프로그램의 단골메뉴로 나온다. 모둠전은 전골로, 잡채는 만두소로 활용하는 조리법을 일러준다. 아무리 변신을 외쳐도 원래 맛을 감추기 힘든지라 운신의 폭이 그리 넓지는 않아 보인다. 음식 재활용과 달리 요즘 디자인 분야에서 재활용은 갈수록 그 영역을 확장하는 추세다. 유행에 예민한 인테리어와 패션의 경우 버려지는 물건의 단순한 수명 연장을 넘어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한 제품들이 각광받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가구 디자이너 피트 헤인 에이크는 폐목재를 활용한 생활 가구로 명성을 얻었다. 군데군데 긁히고 파인 자국이 남아있는 거친 나뭇조각들로 만든 의자와 탁자는 언뜻 미완성처럼 보여도 고가(高價)에 판매되는 디자인 작품이다. 스위스의 프라이타크 형제가 만든 가방도 스타일을 좀 안다는 젊은 세대 사이에 인기가 높다. 가죽이 아닌 트럭에서 사용된 방수 덮개가 원재료다. 숨기려야 숨길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스며든 소재를 활용하는 만큼 동일한 디자인의 가구도 가방도 똑같은 제품이란 없다.

장자가 말한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에 대한 철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순수 예술이다. 세상 사람들은 실용성이나 재화적 가치를 잣대로 쓸모와 쓸모없음의 경계를 가늠하고 한쪽을 배척한다. 그러나 예술은 ‘쓸모없음’에서 그 존재 이유를 찾는다. 시도 그림도 딱히 써먹을 곳 없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김광규 시인의 ‘마지막 물음’은 쓸모와 쓸모없음을 속단하는 세태에 경고음을 울린다. 그냥 싫증나서 혹은 어딘가 고장이 났다는 이유로 우리가 내팽개친 것이 컴퓨터나 휴대전화뿐이냐는 물음에 가슴이 뜨끔해진다. 칠순의 미술가 윤석남 씨의 작업도 무용(無用)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인간의 변덕 탓에 버려진 유기견을 그린 설치작품도, 산골 오두막에서 수거한 낡은 너와에 그린 초상도 캔버스 대신 버려진 나무를 사용해 울림이 깊다.

소설가 김연수 씨는 “시를 읽는 즐거움은 오로지 무용하다는 것에서 비롯한다. 하루 중 얼마간을 그런 시간으로 할애하면 내 인생은 약간 고귀해진다”고 말했다. 창작이 그렇듯 예술을 향유하는 것 역시 ‘쓸모없음’에 맥이 닿아 있는 것이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서 소중한 가치를 찾아내는 것은 결국 마음의 역할이다. 요즘 한국 사회를 보면 쉽게 버리는 문화가 사물을 넘어 사람에게 확대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인간관계나 공동체나 문제가 생기면 머리 맞대고 함께 고쳐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상대편을 내쳐버리려 작정한 듯하다. 물건도 사람도 쓸모와 쓸모없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것, 그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배려이기도 할 텐데.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추석#무용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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