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의자와 배경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이번 추석명절에도 숱한 귀성객들이 고향을 오갔다. 차량 정체로 고생을 하면서도 기어이 고향에 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아들이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추석특집 방송에서 사회자가 스타 부부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부부는 여덟 번의 인공수정 끝에 귀한 아기를 얻었다는데, 과연 어떤 답이 나올까, 호기심이 솟았다.

“멋진 배경이 되어주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저런 아빠를 만난 아기는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인 세상에서 남을 빛나게 해주는 배경이 되었으면 좋겠다니!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다 교통사고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뒤 천신만고 끝에 얻은 귀한 아들에게 그런 소망을 말하는 가수 강원래 씨가 다시 보였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배경’이란 낱말을 듣는 순간 문득 이정록 시인의 ‘의자’라는 시가 떠올랐다.

“허리가 아프니까/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꽃도 열매도 그게 다/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주말엔/아버지 산소에 좀 다녀와라/그래도 큰애 네가/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중략) 싸우지 말고 살아라/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의자 몇 개 내놓는 것이여”

시를 읽는다기보다 시인의 어머니가 평생 살아오면서 터득한 소박한 지혜를 듣는 것 같아서 더 가슴에 닿는다. 시인의 어머니는 ‘가족은 바로 의자’라고 일러준다. 길을 걷다가 다리가 아프고 몸이 고단하여 쉬고 싶을 때, 마침 그 자리에 벤치가 놓여있으면 얼마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른다. 그곳에 잠시라도 지친 몸을 내려놓으면 피곤이 풀리면서 다시 길을 떠날 힘이 생긴다. 더구나 풍경 좋고 그늘 좋은 데에 놓여있는 의자라면 얼마나 좋은가. 지친 마음을 다스려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가는 게 아닐까.

남을 돋보이게 만들어줄 배경이 되라는 아버지는 참 푸근하고 가족에게 좋은 의자가 되어주라는 어머니는 참 따듯하다. 이 가을에 우리도 서로에게 배경이 되고 의자가 되어준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윤세영 수필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