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베이다이허 회의’로 보는 중국 정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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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보하이 만을 따라 22.5km의 해변을 끼고 있는 중국 허베이 성 친황다오 시의 베이다이허는 중국의 대표적인 해변 휴양지 중 한 곳이다. 면적 약 3000m²의 진시황 행궁 유적지가 말해 주듯 역대 황제들도 이곳을 찾았다.

청나라가 1898년 이곳을 ‘내외국인 별장 주거지’로 지정하면서 1949년까지 719동의 별장이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100여 동이 국가나 시의 문물로 지정돼 있다. 고대로부터 제왕을 뜻하는 숫자인 ‘九五(95)’를 딴 마오쩌둥의 ‘95호 별장’도 있었다. 중국을 침략한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고관과 중국 유명인사의 별장이 함께 있어 이곳은 동서 문화의 교류나 융합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베이다이허가 외부에 널리 알려진 것은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공산당 지도부의 은밀한 회의’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스위스 다보스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때문에 유명해진 것과 비슷하다.

여름 휴양지로서 최고의 성수기인 7, 8월 이곳에서는 공산당 최고 지도부나 전현직 지도자들이 은밀히 모여 피서도 즐기고 비공식 회의도 갖는다. 회의가 언제 무슨 주제로 며칠간 열렸는지 한 번도 공식 발표된 적은 없다. 베이다이허의 일부 지역이 봉쇄되면 ‘그들만의 회의’가 열리는구나 하고 추측할 뿐이다. 올해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을 주요 화두로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반부패 개혁에 대한 틀을 다지는 회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1958년 8월 17일부터 30일까지 중앙정치국 확대회의가 열린 것이 ‘1차 회의’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디이차이징(弟一財經) 일보는 공산당 중앙판공청이 1952년 이곳에 있던 공산당 요양원의 관리를 중앙조직부로부터 넘겨받은 뒤 중앙의 간부들에게 1년에 일주일가량 휴가를 보내라고 하면서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유래를 전했다.

전현직 지도부가 일제히 한 휴양지에 모여 비공개 토론을 갖는 베이다이허 회의에는 중국식 사회주의 정치의 키워드 몇 가지가 담겨 있다. 무엇보다 ‘토론과 합의의 정치’다. 퇴임 후 정치에 나서지 않는 것이 관례화된 원로들까지 이 회의에 참석해 전현직을 아우르는 넓은 범위의 지도층이 주요 현안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대외적으로는 화합하는 모양을 연출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퇴임 뒤에도 영향력을 유지하는 ‘원로 정치’의 폐해가 지적되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비밀주의’다. 총서기를 포함한 고위 공산당 지도부 선출이 막후에서 이뤄지듯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 정치가 공산당 엘리트들에 의해 일반 대중에게서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비밀스럽게 이뤄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없지 않다. 1958년 1차 회의에서 ‘영국을 따라잡는 철강 생산’ 등 ‘대약진 결의’가 나와 그 후 3년간 30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는 대재앙을 맞는 원인이 됐다. 후진타오 주석 시절에는 ‘공산당 간부만 호화판 휴가를 즐기느냐’는 비판이 나와 몇 년간 이 회의가 중단되기도 했으나 몇 년이 지난 뒤 흐지부지됐다.

‘소수 엘리트 비밀회의’가 핵심인 베이다이허 회의는 점차 민주화돼 가는 중국의 정치 사회적 현실과는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정치의식이 높아진 중국 국민이 언제까지 ‘그들만의 회의’를 곱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최근 윈난 성에서 지진이 발생하자 시 주석 등이 베이다이허에 가지 못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시진핑식 개혁의 칼날에 베이다이허 회의도 계속 살아남을지 지켜볼 일이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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