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의 생각]<5>세월호 비극의 출발은 ‘독점’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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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시장은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터나 증권거래소 같은 곳들을 가리킨다. 경제학적으로는 ‘개인적 선택들의 총계’라는 추상적 개념이다. 거래라는 말과 개인적 선택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들을 가리키니 혼동과 연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추상적 개념인 시장엔 구체적 거래에서 나오는 벌거벗은 탐욕의 모습이 어린다. 거의 모든 사람이 시장을 천시하고 불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이다.

시장에 대한 믿음이 적으니, 일이 생길 때마다 정부가 나서라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정부는 관료주의에 따라 움직이므로 무기력하고 현장에 대한 지식도 없다. 결국 정부의 몸집과 권한만 늘어나고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따라서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이도록 하게 하면, 즉 시장이 작동하도록 하게만 하면 일은 잘된다.

‘세월호’의 비극은 이 점을 다시 보여주었다. 엄격한 규정과 감독 아래 운항되었지만, 배는 너무 부실했다. 안전에 관한 정부 권한이 늘면,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패가 나와서 문제를 일으킨다. 이번 사고 후 정부가 내놓은 사후 대책이란 것도 수학여행을 금지한 것과 감독 기관을 새로 만든 것뿐이다.

○ 독점의 폐해

이번 비극을 살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월호가 다닌 노선을 그 배를 소유한 회사가 독점했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노선에 다른 회사도 참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승객들은 두 회사를 비교해서 값싸고 안전하고 친절한 회사를 골랐을 것이다. 회사들은 고객을 끌려고 애썼을 것이고 무엇보다 스스로 갖가지 안전 조치들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런 경쟁에서 뒤져서 고객 마음에 들지 않는 회사는 도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해운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면 정부의 규정이나 감독 없이도 안전한 항해가 확보되었을 터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독점 노선을 정부가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독점노선을 만들면서 승객 안전을 보장하려면 믿을 만한 회사들만 배를 띄워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그리고 교묘한 규정들을 만들어서 정치적 영향력이나 뇌물을 쓰는 회사에 독점 노선을 허용했을 것이다. ‘세월호’의 비극은 많은 요인들이 합쳐져 일어났지만 고비마다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배제했다는 사실만은 뚜렷하다.

실제로 독점은 거의 다 정부가 만든다. 규모의 경제(생산요소 투입량을 늘릴수록 이익도 느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연적 독점’은 보기보다 드물다. 철도, 발전, 상수도처럼 자연적 독점이 나온다고 여겨지는 분야들도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경쟁이 나오도록 할 수 있다. 심지어 정부만이 제일 잘한다고 믿는 국방이나 치안 같은 분야들도 시장 원리를 도입할 수 있는 분야가 꽤 많다. 공기업 민영화는 그래서 시급하다. 어쩔 수 없이 정부가 운영하는 경우에도, 시장 원리가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좋은 방안이다.

정치에서든 경제에서든 문화에서든 독점은 본질적으로 좋지 않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는 액턴 경의 말은 “독점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로 바꾸는 것이 훨씬 적절하다. 권력은 정치적 독점을 뜻하는 말에 지나지 않으므로 말이다.

○ 교육 독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가장 아프게 보여주는 분야가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정부가 독점한다. 소비자인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과목도 장소도 시간도 선생도 값도 고를 수 없다. 정부에서 배정하는 획일적 교육 과정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부모들이 자식들의 성품과 희망에 따라 전문가와의 상담을 거쳐 교육 계획을 짜서 가장 나은 교사와 학교를 찾아나서는 일은 꿈도 못 꾼다.

그렇게 철저하게 정부가 교육의 공급을 독점하니, 제대로 된 교육이 나올 리 없다.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교실에선 폭력과 따돌림만 횡행한다. 부실한 교육을 보충하려 부모들이 자기 돈으로 보충 교육을 시키면 ‘사교육은 망국병’이라는 비난을 듣는다. 똑같은 지식인데 정부가 강제하는 것은 ‘공교육’이니 좋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것은 ‘사교육’이라 나쁘다는 것은 해괴한 논리다.

만일 학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맞는 교육 패키지를 고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먼저, 품성이나 능력이 부족한 교사들이 도태될 것이다. 그 대신 인품과 학식과 열정을 갖춘 교사들이 뜻을 펴고 합당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이 교사를 ‘스승’으로 우러러보던 시절이 돌아올 것이다. 좋은 학교들은 번창하고 나쁜 학교들은 문을 닫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문제들이 나오겠지만, 그것들이 지금처럼 심각한 문제들일 리는 없다.

○ 정부의 역할

이처럼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시장이 잘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모든 문제에 대한 일차적 해결책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뭔가. 새로 규정을 만들고 감시 기구를 늘리는 것은 대개 불필요하고 해롭다. 정부의 일은 소비자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독점 기업은 정부가 제시한 안전 기준만 충족시키면 된다. 더 잘해야 할 인센티브가 없다. 세월호도 규정대로 구명정을 여러 대 갖추었지만, 쇠줄로 묶어 놓고도 태연했다. 구명조끼도 규정대로 갖추긴 했지만, 직원들이 관리하기 편하게 한군데에 쌓아 놓았다. 비상시에 승객들이 꺼내 쓸 수 있도록 방마다 나누어 비치하지 않고 사용 방법도 안내하지 않았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장에선 비효율적인 기업들과 방안들은 끊임없이 퇴출된다. 그래서 시장의 전반적 수준이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이런 과정을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라 불렀다. 소비자들에게 외면받아 파괴된 기업들이 쓰던 자원들을 더 나은 기업들이 쓰게 되어 시장과 사회가 함께 발전한다는 얘기다. 소비자들이 절대적 권한을 지닌 시장경제가 우수하고 정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명령경제가 비효율적이어서 끝내 무너지는 것은 바로 이런 과정 때문이다.

찬찬히 살피면 ‘창조적 파괴’는 시장에서 나오는 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제품들과 기업들에 환경은 소비자들의 욕구다. 그런 욕구에 잘 적응하면 번창하고, 적응하지 못하면 쇠멸한다.

시장경제의 우수성은 시장이 진화에 아주 친화적이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당연히, 시장을 이해하려면 진화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이 필요하다. (다음 글에선 진화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
#시장#경제#독점#세월호#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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