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구자룡]길 잃는 ‘한반도의 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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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유럽과 러시아가 ‘신 냉전’ 관계로 돌아서면서 중국이 최대 수혜자라는 분석이 잇따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를 순방하며 ‘아시아 회귀’를 외치지만 미국이 유럽에서는 러시아, 아시아에서는 중국을 상대로 동시 봉쇄 전략을 펴기에는 역부족인 데다 더 급한 전선(戰線)은 유럽이라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어부지리(漁夫之利)에 ‘표정 관리’를 해야 할 대목이 또 있다. 바로 러시아와의 천연가스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의장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제재로 EU가 2020년까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현재보다 4분의 1가량 줄일 것이라고 최근 밝혔다. EU는 2013년 러시아 최대 에너지그룹 가스프롬의 천연가스 매출 중 39%를 차지했다. 러시아로서는 새로운 판로 확보가 시급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가질 정상회담의 가장 중요한 의제도 러시아산 천연가스 가격 협상이다. 양국이 10여 년째 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중국이 기존 협상 가격에서 30%를 깎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유럽에서 떨어져 나온 러시아를 상대로 보다 공격적으로 가스 가격 협상을 벌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러 양국은 한 해 약 38bcm(1bcm은 10억 m³)을 30년간 장기 공급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다. 양국이 제시하는 가격은 과거 최고 1000m³당 100달러나 차이가 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38bcm이라면 1000m³당 가격이 1달러만 달라져도 3800만 달러가 차이 난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판매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을 들이는 곳이 한반도와 일본이다. 러시아 하원이 최근 북한에 대한 부채를 90%나 탕감해주면서 나머지 10% 차관은 한국까지 닿는 가스관이나 철도 건설에 쓸 수 있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러시아로서는 한반도 종단 가스관 건설은 에너지 판로 확보 이상의 전략적 의미가 있다. 유럽에서 당하고 있는 것에서 벗어나고 중국에서 천연가스 판매 문제가 볼모로 잡히는 것도 피하려는 목적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러시아는 한국과 무비자 협정을 발효시켜 한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 인프라를 깔아놓았다. 한반도를 종단하는 천연가스나 철도 등 교통 에너지 대동맥을 구축하기 위한 사전 포석의 의미가 없지 않다. 한국의 한 해 천연가스 사용량은 약 50bcm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미-러 갈등, 중-일 영토 갈등에 따른 미-중 간 신경전, 중-일 영토 갈등 등 한반도를 둘러싼 다층적인 세력 다툼 속에서 한반도는 천연가스 시장과 정치 경제 교통의 요충지 등 이점을 살려 폭넓은 ‘전략적 가치’를 발휘할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은 ‘4차 핵실험’을 들먹이며 ‘한반도의 꿈’을 거품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북한이 ‘목엣가시’처럼 한국과 연해주를 단절시켜 박근혜 정부가 펼치고자 하는 ‘해양과 대륙 세력을 잇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을 방해할 가능성도 크다.

중국도 변수다. 최근 중국의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중국이 북한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3가지 이유’라는 글에서 “한반도의 현상 유지가 모든 대국의 희망”이라고 했다.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말보다 중국의 속내가 잘 드러난 말일 수 있다.

구자룡 베이징 특파원 bonhong@donga.com
#우크라이나#크림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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