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덧없이 사라지기에 아름다운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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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러, ‘회색과 녹색의 조화’, 1872∼1874년.
휘슬러, ‘회색과 녹색의 조화’, 1872∼1874년.
“어떤 그림을 가장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른바 미적 취향을 묻는 것인데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감정, 건강상태, 날씨, 시간, 장소에 따라서 좋아하는 그림의 순위가 바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19세기 미국화가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의 그림에 마음이 끌린다.

영국 런던의 재력가 알렉산더의 딸 시슬리가 모델인 이 초상화를 선정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들을 영원한 미로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눈 밝은 사람이라면 그림에서 너무도 빨리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다운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세 가지는 소녀, 나비, 꽃을 가리킨다. 휘슬러는 왜 아름답지만 덧없는 것들을 초상화에 그렸던 것일까?

해답은 그림의 배경에 보이는 나비문양의 서명에서 찾을 수 있겠다. 휘슬러는 나비의 삶을 동경한 나머지 나비사랑을 독특한 서명으로 증명한 화가로도 유명하다. ‘하필 나비였을까?’라는 의문은 독일의 소설가 헤르만 헤세의 산문집 ‘나비’를 읽으면 풀리게 된다.

‘나비의 색과 형태가 갖는 화려함이나 다양성은 빨리 시드는 꽃처럼 파손되기 쉽고 덧없는 것이지만 꽃처럼 한 곳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지와 창공 사이를 가볍게 상승, 하강하기 때문에 예로부터 나비는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조적 영감을 자극했다. 시인들은 나비를 ‘날개 달린 꽃’이라고 불렀다’

이 그림에 매혹당한 것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가장 덧없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삶의 진리를 한정된 색채(회색, 녹색, 흰색)와 기하학적 구도(수직, 수평)의 조화를 통해 전달하기 때문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 협회장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그림#소녀#나비#꽃#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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