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평인 칼럼]안철수를 분석해야 민주당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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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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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논설위원
송평인 논설위원
한때 ‘원초적 본능’처럼 정신분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인기가 있었다.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개발한 정신분석은 일반 정신과 의사들이 사용하는 치료 방법은 아니다. 정신분석은 약물을 사용하지 않고 최면을 걸지도 않는다. 그 대신 대화로 치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런 대화에서 환자들이 보이는 최초의 반응은 ‘저항(resistance)’이다. 정신적 질환은 환자의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에서 비롯되고 환자는 그것을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꺼리지 않았다면 병이 생길 이유도 없다.

신경증 환자와 닮은 민주당

야권에서 대선 패배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민주통합당은 진정한 원인을 직시하려 하지 않고 자꾸 다른 이유를 둘러댄다. 그 모습이 꼭 분석에 저항하는 신경증 환자 같다. 민주당이 진 것은 단일화에만 매달렸기 때문도 아니고, 공약이 차별성을 보이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정희 때문도 아니다. 단일화도 완벽하지 않았고 공약도 여권에 선점당한 측면이 없지 않고 이정희도 문제였다. 그러나 정치를 ‘가능한 것의 기술(技術)’이라고 할 때 야권은 이번 대선에서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했다. 그럼에도 패배한 것은 친노 중심의 야권을 국민이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륜 스님이 얼마 전 ‘안철수로 단일화했더라면’이란 가정을 던졌을 때 민주당이 보인 신경질적인 반응을 떠올려 보자. 분석에 저항하는 환자는 분석가가 질환의 진짜 원인에 접근할수록 짜증을 내는 법이다. 법륜 스님의 가정은 진부하다 못해 부질없다. 그렇다고 억지는 아니다. 전문가는 안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인은 누구나 해 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발상이다. 이상한 것은 오히려 그런 것에 비정상적으로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는 쪽이다. 바로 그런 데서 질환의 증후를 읽어내는 것이 정신분석의 한 방법이다.

안철수 현상이란 1970, 80년대 대학가의 용어로 말하자면 운동권식 정치 대신에 학생대중적 정치를 원한 것이다. 당시의 학생대중은 야권 성향이 강하지만 그렇다고 운동권에 늘 동조한 것은 아니었다. 대중이란 말 그대로 잡다한 것이다. 그중에는 머리로만 운동을 하다가 평생 부채의식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극단으로 흐르는 운동권에 신념을 갖고 동조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중간에서 고뇌하던 회색인(灰色人)이란 유형도 있었고 졸업한 뒤 뒤늦게 정치와 사회에 눈을 뜬 사람도 있다. 그들도 서울의 봄, 6·29 같은 항쟁에서는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안철수 자신이 학생대중이었고 그런 사람으로서는 처음 야권의 열광을 끌어냈다. 안철수의 정치 참여를 친노 진영이 반기는 척하면서도 ‘네까짓 게 무슨’이라는 내심을 끝내 숨기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안철수는 없다’고 노골적으로 무시하는가 하면, 과거 모든 학생을 운동권과 비운동권으로 나눠 비운동권을 입신양명 도서관파로 비하하고, 단일화 국면에서는 형님-아우라는 모멸적인 관계 설정으로 애송이 취급하며 주저앉히기를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이 실은 안철수의 돌연한 부상이 친노 운동권 정치인들에게 야권의 주도권을 잃을 수도 있다는 트라우마(trauma·상처가 된 경험)로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친노의 트라우마 ‘안철수 현상’

안철수는 깡통인가. 깡통은 심한 표현이고 처음에는 신선했으나 나중에는 답답해졌다는 정도로 말해 두면 크게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안철수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안철수로 표현된 야권 재구성에 대한 요구를 민주당이 직시하지 않는 한 대선 패배의 진정한 원인 분석에 도달할 수 없다. 원인은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더 깊이 잠복할 뿐이다. 분석을 당하는 측에게 요구되는 것은 솔직함이다. 저항이 크면 분석은 힘들어지고 치료는 실패로 돌아갈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민주당#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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