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45>나는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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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1963∼ )

대학교수의 손이 왜 이래?

악수를 하는 사람들은
나뭇등걸처럼 갈라진 나의 손등을 보고
놀라기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나는 정답 같은 당당함을 가지려고 하면서도
그때마다 움츠러든다

내가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는 이유는
위생적으로 아이들에게 밥을 해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닮고 싶은 손이 있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노동자와 흰 손의 사나이]에 나오는 사나이는
당국의 눈치보다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육 년이나 쇠고랑을 찼고
마침내 교수형을 선택했다
나도 빈 요구르트병 같은 노동자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출석 확인을 하듯 일기를 쓰고
연서를 하고
때로는 집회에 나가지만
흰 손의 사나이가 되지 못했다

그리하여 최소한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대학교수의 손이 왜 이래?’라… 대학교수가 뭐? 대학교수의 손은 어때야 하는가?

이 시대에, 손등이 ‘나뭇등걸처럼 갈라진’ 노동자로도 일하다가 대학교수가 된 한 인물의 성격과 가치관과 갈등과 살아가는 모습이, 한 편의 단편소설처럼 그려진 시다. 지적 능력의 발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안정된 삶 등의 욕구를 추동력으로 대학교수가 되는 데 성공한 화자는, 그러나 마음이 편치 못하다. 자신이 가진 힘을 노동자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바치고 결국은 희생당한 ‘흰 손의 사나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뒤에 두고 온 불행한 형제 같은 노동자들을 위합네 하지만 흉내만 낼 뿐이다, 고작 노동자 같은 손을 고수하는 것이 내 정당화다, 라고 화자는 자기를 고발한다. 화자여, 핸드크림은 노동자도 바를 수 있고 농부 할머니도 바를 수 있다. 그냥 당당히 핸드크림을 바르셨으면 좋겠다. 핸드크림은 인생에 있어서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잘 아실 것이다.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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