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킴벡의 TRANS WORLD TREND]<3>슬로 푸드에 빠진 뉴요커들 이번엔 슬로 코스메틱 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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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인 ‘홀푸즈 마켓’에 마련된 슬로 코스메틱 (slow cosmetic) 코너.백화점 화장품 부스처럼 카운슬러는 없지만 천연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조엘 킴벡 씨 제공
미국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인 ‘홀푸즈 마켓’에 마련된 슬로 코스메틱 (slow cosmetic) 코너.백화점 화장품 부스처럼 카운슬러는 없지만 천연 성분을 꼼꼼히 따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조엘 킴벡 씨 제공
‘슬로 코스메틱(Slow Cosmetic)’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슬로 푸드’를 알고 있다면 이미 절반을 아는 거나 다름없다.

‘슬로 푸드’는 유기농 음식을 먹고 유기농 재료를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시작됐다. 이 개념이 이제 화장품으로 번지고 있다. 피부에 빠른 효과를 내는 화장품에 욕심내기보다 점진적으로 피부 본연의 힘을 기르는 게 바로 ‘슬로 코스메틱’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 뉴욕에서 유기농은 지금처럼 ‘주류’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를 사용한 ‘오가닉 푸드’는 그리 맛있지 않았다. ‘몸에 좋은 게 입에 쓰다’는 말처럼 몸에 좋다니 먹긴 하지만 손가락을 치켜들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은 달라졌다. 오가닉 푸드 중에서 맛없는 것을 찾기가 되레 힘들다. 오가닉 푸드가 아닌 것을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뉴요커의 정신 깊은 곳까지 유기농이 뿌리를 내린 게 틀림없다.

그러다 보니 유기농 안에서 더 새롭고 더 안전하며 더 신뢰할 수 있는 파생 장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이 바로 그것. ‘비욘드 오가닉(Beyond Organic)’으로 불리는 이 개념은 본래 자연이 가진 힘을 이용해 유기농법으로 재배하고 처리한 제품을 말한다.

일단 유기농 화장품은 기존 화장품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다. 주름을 없애 준다고 숭배하던 레티놀 성분은 화학 성분의 대명사로 ‘제거 대상 1호’가 됐다. 화장품을 장기간 유지해 주는 파라벤 성분은 어떤가. 피부를 손상시키는 최대의 적으로 분류됐다. 치아를 튼튼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불소 성분은 치아 뿌리를 망치는 ‘배신자’ 취급을 받는다.

유기농 화장품은 화학 성분에만 민감하게 구는 게 아니다. 자연 성분이라 해도 원재료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하지 않았다면 유기농 화장품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마치 채소를 먹는 게 좋지만, 농약을 뿌리고 유전자 변이를 감행한 채소는 몸에 나쁠 수도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천연 재료에서 유래한 성분이냐 아니냐가 유기농 화장품의 중요 덕목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이유로 유기농 화장품은 표시성분 자체가 기존 화장품과 다르다. ‘레티놀이나 히알루론산이 몇 mg 함유됐다’가 아닌 ‘전체 제품의 몇 %를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재료로 만들었다’는 식으로 표시된다.

예전 같으면 피부 질환은 병원에서 처방을 받아 약으로 치료하는 것이 당연시됐다. 하지만 최근 빠른 효과와 화학 성분을 내세운 약보다 효과는 느려도 피부에 무해한 오가닉 화장품을 대신 쓰는 사례가 늘었다.

유기농 화장품 제조사들은 백화점 부스가 아닌 ‘홀푸즈 마켓(Whole Foods Market)’이나 ‘트레이더 조스(Trader Joe’s)’ 등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을 공략한다. 슈퍼마켓 한쪽에서 판매되다 보니 백화점 부스처럼 ‘몇 주 안에 주름 제거나 미백 효과를 볼 수 있다’고 귀띔하는 카운슬러는 없다. 그 대신 제품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펴보는 손님들이 눈에 띈다. 이들은 천연 성분에서 유래한 유기농 화장품을 활용해 좀 더디더라도 근본적인 재생과 치유를 하고 싶어 한다.

어쩌면 요즘 뉴요커들은 앞만 보고 치열하게 살아온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오가닉 푸드나 바이오다이내믹 음료로 몸의 내부에서 원기를 찾고, 약이 아닌 유기농 화장품으로 치유를 병행하는 게 아닐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옛말이 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오가닉’한 삶은 즉각적인 반응에만 익숙한 사람을 위한 복음(福音)과 같다. 서두르지 않고 여유로운 ‘슬로 라이프’에 뉴요커들이 눈을 돌리는 이유다.

패션 광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재미 칼럼니스트 joelkimbec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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