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둥기둥 둥둥∼ 암세포야 물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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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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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이수희 교사와 제자들의 ‘백제가야금연주단’… 꿈과 도전

음악은 사제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힘들 때, 선생님이 아파서 힘들 때 음악이 지켜줬다. 가야금으로 음악만이 아니라 사랑을 연주한 셈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미정 이운영 김성아 이수희 김선복 김민아 씨. 백제가야금연주단 제공
음악은 사제를 이어주는 끈이었다. 학생들이 공부하고 힘들 때, 선생님이 아파서 힘들 때 음악이 지켜줬다. 가야금으로 음악만이 아니라 사랑을 연주한 셈이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미정 이운영 김성아 이수희 김선복 김민아 씨. 백제가야금연주단 제공
《 의사는 입을 열지 않았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니,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은 표정 같기도 했다. 종잡을 수 없었다. 말을 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뜸을 들이던 그가 천천히 얘기했다. “결과는 나중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몇 가지 검사를 더 해봐야 해요.” 이수희 교사(46·여)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뭐가 안 좋은가…. 소화가 잘 안됐다. 키 158cm에 몸무게가 39kg까지 줄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났다.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2006년 3월이었다. “어디 이상이 있는 건가요?”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왼쪽 가슴 부위에 뭔가 보입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정밀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전화가 왔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이 교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수업에 들어갔지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이 아이들을 못 볼 수도 있겠구나.” 유방암 1기 선고를 받았을 때 그는 세상이 끝난 줄 알았다. 》
○ 가야금 덕에 꿈 찾은 백제중 학생들

이 교사는 1989년 충남 부여군 백제중학교에 부임했다. 새내기 여교사는 유일한 음악선생님이었다. 그는 대학에서 가야금을 전공했다. 학생들 앞에서 연주를 했다. “저게 뭐야?” 학생들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때는 가야금이 흔한 악기가 아니었거든요. 게다가 여기는 시골이니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한국 사람이 김치를 모르는 것과 같으니까요.”

특별활동을 위해 ‘가야금부’를 만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시간. 8명이 모였다. 이 교사는 자기 악기 세 대를 갖다놓고 가르쳤다. “선생님, 저 손에서 피나요. 병 걸렸나 봐요. 으어엉….” “악! 손가락이 아파요. 선생님….”

학생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야금을 만졌다. 소리를 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줄을 튕기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인기 폭발이었다. 연습을 먼저 하겠다고 줄을 설 정도였다. 교무실에 와서 부탁하는 학생도 생겼다. “선생님∼. 저 따로 연습시켜 주시면 안 돼요?”

가야금부는 그해 충남학생음악경연대회에 나갔다. 황병기의 ‘침향무’를 연주했다. 1등을 차지했다. 그 뒤부터였다. 가야금부에 들어가려고 학생들은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야 했다. 이후에도 꾸준히 상을 탔다. 1995년에는 전국탄금대가야금경연대회에서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가야금’ 하면 ‘백제중’이라는 말이 들렸다.

이 교사에게 하루는 24시간으로 모자랐다. 가야금뿐 아니라 피아노 합창 독창을 모두 가르쳐야 했다. 쉬는 시간은 거르기 일쑤. 점심을 5분 만에 먹고 국악실로 가고 오후 8, 9시까지 연습을 이끌었다. 2004년 부여군학생음악경연대회에서 백제중은 모든 상을 휩쓸었다. 국악 피아노 합창 독창 중창.

지도교사상을 여섯 차례나 탔다. 신났다.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성과가 이어질수록. 하지만 몸은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해서 그러려니 했다. 아니었다. 잠을 자도, 주말에 쉬어도 개운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병원을 찾았더니 유방암이라고 했다.

창밖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때 이 교사는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건강검진을 받은 지 한 달 뒤였다. 병실에 누워 있으니 관 속에 있는 듯했다. 실은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렇게 뛰어다녔을까. 건강도 챙길 걸.” 우울증 무력감 좌절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런 이 교사의 몸과 마음을 제자들이 일으켜 세웠다. “선생님∼!” 학생들은 연락도 없이 병실에 찾아와서 엉엉 울었다. 이 교사에게 가야금을 처음 배우고 예고에 합격했던 학생들이었다. 서울의 예고에서 실기시험을 치르려고 모텔에서 같이 지내며 손을 꼭 잡고 자던 모습이 떠올랐다.

1995년에 가야금부 악장이던 김성아 씨(30·여)는 이 교사의 소식을 듣고 졸업생들을 급히 불렀다. “막 대학을 졸업한 때였어요. 선생님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했지요. 가야금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죠.”

○ 제자들 덕에 암 이겨내는 선생님

백제가야금연주단은 전통성과 현대성을 조화하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11월 정기연주회에서는 ‘맘마미아’를 연주했다.
백제가야금연주단은 전통성과 현대성을 조화하려고 노력한다. 지난해 11월 정기연주회에서는 ‘맘마미아’를 연주했다.
제자들이 말했다. “함께 연주단을 만들어서 공연해요. 선생님께서 씨를 뿌려 주셔서 저희가 나무가 됐어요. 이제 선생님을 위해 연주할게요.” 이 교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왜 내게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절망했을까.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있는데….”

백제가야금연주단은 그렇게 시작됐다. 다음 해 창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준비했다. 사제가 병실에서 머리를 맞댔다. 항암제를 맞을 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이 교사는 곡을 만들었다. 의사도 응원했다. “열심히 하세요.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초창기 멤버는 10명이었다. 이 교사가 1989년 가야금을 처음 가르쳤던 학생도 있었다. 대부분 직장이 있거나 도립 또는 시립 연주단 소속이었다. 마땅한 연습 장소가 없어 평일 밤이나 주말마다 백제중에 모였다. 아내가 연습할 때 밖에서 남편이 아이를 업고 기다리기도 했다.

연주단을 세상에 선보이고 싶었다. 이 교사는 부여군청을 찾았다. “제가 가르친 학생들과 가야금연주단을 만들었습니다. 백제문화제에서 공연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러고는 노트북을 열었다. ‘그리움은 바람이 되어’ ‘그 별과 달’. 이 교사가 만든 곡을 제자들이 연주한 동영상이 나왔다.

공연 프로그램을 이미 확정했지만 부여군은 연주단을 넣어줬다. 전통악기인 가야금으로 현대곡을 표현한 데 신선함을 느꼈다고 했다. 20분 공연하고 30만 원을 받았다. 간식비도 안 되는 돈이었지만 연주단은 마냥 신났다. 이후 공연 요청이 잇따랐다. 국립부여박물관 송년의 밤(2007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2008년), 한-러 교류축제 축하공연(2008년)….

이 교사의 욕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얘들아, 우리가 명색이 연주단인데 앨범이 있어야지 않겠니? 연주 때마다 사람들이 앨범 없냐고 묻기도 했잖아.”

제자들은 모두 말렸다. 후원금도 없이 3000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이운영 씨(30·여)는 “솔직히 우리가 앨범을 낼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한다고 하면 꼭 해낸다”라고 말했다. 이 교사가 부담해 첫 앨범이 2009년 4월에 나왔다. 이 교사의 창작곡뿐 아니라 ‘왈츠’ ‘맘마미아’ 등 외국 노래도 편곡해서 넣었다.

앨범 발매 이후 연주단은 세계적인 무대에 초청받았다. 주요 20개국(G20) 관광장관회의 초청연주(2010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개막식(2010년), 일본 후쿠이켄 국제전통예술축제(2011년), 한-호주 수교 50주년 ‘2011 코리안 페스티벌’(2011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개막식(2011년).

“창단하면서 ‘세계적인 연주단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 우리 모두 ‘에이, 설마’ 하며 웃었거든요. 그런데 정말 세계로 나아갔어요.” 김성아 씨의 말이다.

연습할 때면 이 교사는 천하장사로 변한다. 연습을 시작하면 4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제자들은 눈치를 보면서 서로 옆구리를 찌른다. 아픈 선생님이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들이 쉬자고 말을 꺼내기 어렵다.

공연 때는 분장도구와 옷을 상자 두 개에 넣어 들고 온다. 제자들을 예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제자들은 이런 선생님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 6년 전 선생님에게 했던 창단 제안이 헛되지 않았기에 말이다.

“선생님은 연습을 안 하면 오히려 아파요. 저희 기를 다 빨아먹는 것 같아요.”(김미정 씨·28·여). “연주단을 결성하고 나서 선생님께서 확실히 건강해지셨어요. 에너지가 넘치시죠.”(김민아 씨·29·여)

제자들의 말에 이 교사는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과 있을 때는 아픈 줄을 모르겠어요. 아파도 아픈 척할 수 없으니까요. 연습만 끝나면 금방 아파요. 아직 항암제를 먹지만 함께 연주하는 게 더 좋은 약인 것 같아요.”

이들은 지난해 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 주로 퓨전음악을 연주한다. 전통음악을 들려주면 꾸벅꾸벅 조는 학생들을 보고 다른 방식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 것이 좋아도 아이들한테 다가가려면 방법이 달라야죠. 요즘 아이들은 랩을 속사포로 쏟아내잖아요. 옛날 음악을 그대로 하라고 하면 안 되죠. 전통음악은 나름대로 이어가고 젊은 사람 정서에 맞는 국악도 발전해야 해요.”

이에 따라 연주단은 비보이나 쥬얼리 임지훈 등 대중가수와 함께 공연했다. 청중의 나이가 많을 때는 트로트를 연주한다.

연주단은 이제 소외된 이웃과도 음악을 나누려 한다. 이 교사가 아픔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 음악을 널리 전하고 싶어서다.

이운영 씨는 “보육원과 요양원에서 공연을 했다.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힘없어 하던 분들이 가야금 소리에 박수를 치며 웃을 때 뿌듯했다. 선생님이 건강해지셨듯이 다른 분들에게도 힘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5월부터는 한 달에 두 번씩 부산의 중증장애인시설에 내려가 가야금을 가르칠 계획이다.

○ 소외된 곳에 울려퍼질 희망의 가락

22일 밤. 백제중에 가야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두둥 기둥 둥둥 기둥 기두둥 둥 디두둥, 디둥 둥 디두둥 두두둥….’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Mother Mary comes to me….’ 비틀스의 ‘렛 잇 비’였다.

이틀 뒤의 국립청주박물관 공연을 위해 사제가 다시 모였다. 대전 용인 오산 공주에서 찾아왔다. 제자들은 이 교사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에도 연습을 했다.

“선생님, 아직 추운데 우리 한복 윗도리 입고 연주하면 안 될까요?” “얘는…. 얼마나 예쁜데. 내가 머리도 더 예쁘게 해줄게. 조금만 참아∼.”

국악실은 가야금 소리 반, 수다 소리 반이다. 공연 제목은 ‘봄이 오는 소리’. 교사 덕분에 꿈을 찾은 제자들, 이런 제자들 덕분에 병마를 극복한 교사, 그런 선생님을 보며 미소를 짓는 제자들. 가야금에서 사랑꽃이 피어났다.

부여=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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