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곽금주]가을 타는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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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가을이 깊어진다. 아침과 밤의 스산한 분위기가 완연하고, 해 지는 저녁은 한결 더 쓸쓸하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외로움도 깊어진다.

기온 변화에 따라 인간의 생체리듬 또한 변화가 일어난다. 심리치료 연구자인 제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일조량이 줄어들고 기온이 낮아지면 노르에피네프린과 세로토닌같이 정신적으로 활동적이게 만드는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감소한다. 때문에 가을이 되면 심신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고 차분함을 지나 우울해지기까지 한다.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렇게 날씨는 사람들의 기분에 영향을 주고 또 사람들의 일할 욕구에도 관여한다. 온도가 낮고 구름이 많이 낀 날보다 맑고 화창한 날씨에 왠지 기분이 좋아지고 뭔가를 이룰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개인차가 있지만 날씨에 대한 반응은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 심리학자 A G 반스톤에 따르면 여자들이 날씨나 온도에 비교적 덜 민감한 편이다.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에 남자들은 일하고자 하는 욕구가 더 강해진다. 직무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일에 대한 욕심도 증가한다. 반면에 날씨가 스산해지고 추워지면 남자들은 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일할 욕구가 떨어지고 뭔가 다른 소일거리를 찾고자 한다. 그래서 스산한 비 오는 날 곧장 퇴근하기보다 소주와 김치전에 마음이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찬바람 불면 자신감 잃고 초조해져

여름에서 가을로의 변화는 남자의 마음을 흔든다. 낮 시간이 짧아지고 자연광선을 쬐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특히 회사 안에서만 활동하는 이들은 더더욱 태양광선과 멀어진다. 비타민D는 햇빛을 받으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비타민D는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도록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햇빛이 부족하고 야외 활동이 줄어들면서 남성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늘어나고 초조함이나 불안감은 증가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이어진다. 이 시기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감소는 남자들의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친다. 우선 남자들은 갱년기를 느끼기도 한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이 지나가 낮 시간이 줄어들고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남자들은 늙어 간다는 갑작스러운 느낌을 가진다. 갑자기 모든 것에 자신이 없어지고 혼자인 것 같은 외로움이 엄습하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아지면 남자들은 활기가 떨어지고 성욕이 감소한다. 테스토스테론은 다른 사람과의 경쟁과도 관련이 있다. 경쟁에서 이기게 되면 급격히 증가하기도 하고 지게 되면 반대로 그 수치가 내려가기도 한다. 수치가 낮아지면 남자들은 테스토스테론이 주는 행복감과 권력감을 누리지 못한 채 쉽게 좌절감에 빠지고 억제 욕구가 증가한다. 이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제대로 얻지 못하면서 남자들은 통제감을 잃어가고 스스로 모욕감을 느끼게 된다.

여러 연구자는 남자들도 테스토스테론 수준이 변동할 때마다 여자와 같이 생리 전 증후군과 유사하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남자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15분마다 갑자기 급상승할 경우 신체적 감정적 변화가 일어난다. 즉 활기 저하나 고조, 분노 같은 부정적인 기분, 요통, 불면증, 두통 등 수많은 ‘여자의 월경 전 증상’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계속되거나 자아 존중감이 위협받을 때에도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변하며 이 역시 유사한 현상을 일으킨다. 사실 연령이 많아질수록 이런 주기 변동이 심해져 간다.

이렇게 남자들도 호르몬 주기에 따라 영향을 받지만 그럼에도 이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조지타운대 에스텔 라미 교수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습득된 “남자는 강인해야 한다”는 자기 이미지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남자들은 자신에게 호르몬 주기가 있음을 부인하고 좀처럼 느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신체 리듬과 소통하지 못하는 남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회피하려 하므로 결국 폭발해버릴 때까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속삭임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남자들은 자신의 내적 고통에 덜 민감하고 우울이나 고통을 표현하고 처리하는 것에 낯설다. 한 연구에서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세로토닌 효과를 차단하는 물질을 탄 음료를 마시게 하고 이들의 뇌 활동을 촬영했다. 그 결과 세로토닌 감소가 뇌의 주요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의 반응은 각기 달랐다. 여자는 자신의 울적한 기분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에 남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은둔하여 알코올에 의존하며 고통스러운 기분에서 벗어나려 했다. 이것이 지속될 때 만성적으로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혼자 고민 말고 누군가에게 표현을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남자들이여, 가을의 울적함을 솔직하게 표현해 보자. 괜한 허세 부리지 말고 다소 여성스럽게 느껴질지라도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고 누구에겐가 하소연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 가을을 보내 보자.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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