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미국 선거의 돈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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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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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13일 미국 아이오와 주 에임스의 아이오와주립대에서 열린 공화당 대선후보들의 ‘스트로폴(비공식 예비투표)’은 후보들이 낸 돈으로 유권자가 음식과 음악을 즐기는 페스티벌이었다. 캠퍼스엔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이 많았다. 실제 투표자는 약 1만7000명이었지만 캠퍼스에 운집한 사람은 4만 명에 이르렀다. 모의투표인 만큼 결과는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공화당 경선의 풍향계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많은 후보가 전력투구했다.

이번 투표는 공화당 아이오와지부가 감독을 맡고 후보들이 배우 역할을 하는 미인대회나 마찬가지였다. 관객(투표자)은 배우(후보자)들에게서 30달러짜리 공짜 입장표를 받았고, 점심식사도 대접받았다. 배우들은 자신을 찍어줄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 전세버스를 동원했고 기념 티셔츠와 모자도 나눠줬다. 인기투표에서 1등을 해야 차기 대선 고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에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후보들은 투표장 근처에 마련된 텐트를 최저 1만5000달러(약 1600만 원)에서 최고 3만1000달러에 빌렸다. 길목이 좋고 넓은 텐트는 비싸게 팔렸고 후미진 곳의 텐트는 절반 값에 팔렸다. 티켓 값과 텐트 임대비용은 모두 공화당 아이오와지부가 가져갔다.

가장 붐빈 텐트는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미네소타)의 캠프였다. 티파티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바크먼 의원 텐트엔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바크먼 캠프 측은 투표 마감을 1시간 앞둔 오후 3시에 티켓 6000장이 모두 배포됐다고 선전했다. 티켓 1장에 30달러니까 18만 달러를 투표자에게 뿌린 셈이다. 투표를 마친 사람들을 위한 바비큐 파티가 열렸고, 음료수와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까지도 무료로 제공됐다. 에어컨이 설치된 텐트 안에선 컨트리 가수 랜디 트래비스의 콘서트가 열렸다. 바크먼은 미네소타 주 하원의원이지만 고향은 아이오와 주 워털루다.

바크먼 캠프가 하루 종일 북적였던 것과 달리 경쟁자인 팀 폴런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캠프는 비상이 걸렸다. 텐트의 절반가량은 텅 비었고 자원봉사자들의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다. 투표 종료 1시간을 앞두고 폴런티 후보의 부인 메리 씨가 연단에 올라가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투표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귀담아듣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이날 승리의 티켓은 바크먼 후보가 거머쥐었다. 총 투표 수 1만6892표 중에서 4823표를 얻어 여론조사에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이어 2위를 다투던 폴런티 후보(2293표)를 배 이상의 차이로 눌렀다. 바크먼 후보가 폴런티 후보보다 돈을 더 쓴 결과였다.

3등에 그친 폴런티 후보는 결국 중도사퇴를 선언했다. 조직 동원에 실패한 폴런티 후보가 남긴 사퇴의 변은 “부자도 아닌 내가 시간을 더 끌어 참모들에게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다음 날 바로 부인과 두 딸을 데리고 선거 매니저의 차를 빌려 타고 고향인 미네소타 주로 돌아갔다.

깨끗한 이미지를 갖고 있던 폴런티 후보가 중도 사퇴를 선언하는 모습에서 돈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국 선거의 한 단면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대선레이스를 달리려면 앞으로 들어갈 돈이 무궁무진한데 3등에 그친 상황에서 자금 조달이 여의치 않을 것으로 판단한 폴런티 후보는 일찌감치 선거를 접었다. 에임스 스트로폴은 냉혹한 자본의 논리가 미국 선거에 적용되는 현실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여줬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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