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창원]쇠락하던 日 온천마을의 회춘

  • Array
  • 입력 2011년 7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창원 도쿄 특파원
김창원 도쿄 특파원
일본 남부 규슈(九州) 지역에 벳푸(別府)라는 온천마을이 있다.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관광지이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곳은 ‘온천지’라는 옛 명성에만 매달린 채 시들어가는 도시였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아 고향을 지키는 전형적인 일본의 고령화 도시였다.

쇠락해가는 도시의 운명을 180도 바꿔놓은 것은 10여 년 전 일본의 전통 사학법인 리쓰메이칸(立命館)이 이곳에 세운 ‘리쓰메이칸 아시아태평양대학(APU)’이었다. 이후 벳푸는 젊음과 활기를 되찾은 국제도시로 탈바꿈했다. 세계 85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모여 사는 작은 지구촌은 온천보다 더 유명한 ‘지역 특산물’이 됐다.

APU는 외국인 학생(2700여 명)이 전교생의 절반을 차지하는 독특한 대학이다. 벳푸 시가 속한 오이타(大分) 현(한국의 광역지자체 도에 해당)의 인구 1만 명당 외국인 학생은 34.6명으로 일본 지자체 가운데 단연 선두다. 한국 학생도 699명이 재학 중이다.

취업자의 3분의 1이 비정규직이라는 일본에서 해마다 300∼400여 개 기업이 이 학교를 찾아와 졸업예정자의 95%를 찜할 정도로 학생들의 실력은 출중하다. 개교 10년 만에 이룬 이 같은 성과를 두고 일본에서는 ‘APU의 기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더욱 놀라운 것은 지자체가 똘똘한 대학 하나를 유치함으로써 거둔 성과다. APU 학생과 교직원 7000여 명이 한 해에 생활비와 집세 등으로 직접 지출하는 비용은 121억 엔. 오이타 현은 이 돈이 부동산, 서비스업 등 각종 산업으로 퍼지면서 유발하는 경제효과가 212억 엔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한다. 지자체가 APU 설립 당시 토지 무상 제공이나 건축비 등으로 지원한 200억 엔을 거뜬히 넘는 액수다.

벳푸 시내에서 온천호텔을 운영하는 가이 겐이치(甲斐賢一) 사장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젊은이들로 도시가 젊어졌다. 지역 주민이 이들과 교류하면서 얻는 유무형의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APU는 지자체의 발상의 전환과 대학의 뚜렷한 비전 제시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오이타 현과 벳푸 시는 1985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급속히 줄자 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전통적인 해법에 매달렸다. 하지만 늙어가는 도시에 기업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에 리쓰메이칸은 조만간 도래할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명실상부한 국제대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일본 내에는 ‘아태시대’를 표방하는 국제대학이 여럿 있었지만 일본 학생만 모아놓고 미국과 유럽 등 서구의 눈으로 정리된 연구 성과에만 의존하고 있었다. APU는 죽어가는 도시를 일으키고 싶은 지자체의 욕구와 아태지역의 시선에서 아태지역을 연구하고 싶은 목마름이 만들어낸 의기투합의 산물이었다.

지난 10년간 APU를 졸업한 6800여 명은 세계 곳곳에서 벳푸를 ‘제2의 고향’으로 알며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일본의 시골마을 벳푸를 세계에 알리며 시민 교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2년 전 이 학교를 졸업하고 벳푸의 현지 여행사에 취직한 중국인 뤼판(呂凡) 씨는 “대학 재학시절 보고 느낀 일본인의 따뜻한 마음과 고마움을 고국에 전하는 가교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세계화’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돼버린 요즘, 정부나 기업이 외치는 강요된 세계화가 아닌 시민 차원의 진정한 세계화가 일본의 시골마을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벳푸에서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