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최영해]게이츠 이임식과 오바마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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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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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밥, 이건 프로그램에 없는 건데 잠시 일어서 주실래요? 대통령이 민간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입니다. 오늘 이 자유의 메달을 미국 22대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에게 수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지난달 30일 미 국방부 청사 앞 리버 테라스 퍼레이드 광장에서 열린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이임식장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츠 장관을 떠나보내는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임식장에서 게이츠 장관도 사전에 눈치채지 못하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는 이벤트를 선물했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발탁해 국방장관이 된 게이츠 장관은 ‘구(舊)시대의 인물’인데도 변화를 주창한 오바마 대통령은 왜 그를 신임했을까. 오바마 대통령은 이유를 이날 연설에서 밝혔다.

“내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게이츠 장관은 40년 동안 7명의 대통령 아래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한 기자가 게이츠 장관에게 ‘8번째 대통령을 모시기 위해 남을 뜻이 있느냐’고 묻자 게이츠 장관은 ‘상상할 수 없는 일(inconceivable)’이라고 했지요. 치열한 토론과 함께 단호한 결정이 뒤따르는 오벌오피스(백악관 집무실)와 시추에이션룸, 전쟁 상황실에서 게이츠 장관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국방장관 중 한 사람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벌여 놓은 이라크전쟁과 아프가니스탄전쟁을 비난했지만 전쟁 중에 장수(將帥)를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게이츠 장관을 전적으로 신임했다.

떠나보내는 게이츠 장관에 대한 극찬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게이츠 장관은 ‘내가 알게 되면서 존경한 사람’이었고 ‘겸손한 미국의 애국자’였으며 ‘상식과 품위를 갖춘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의 가장 훌륭한 공복(公僕) 중 한 사람’으로 게이츠 장관을 꼽았다.

대통령은 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매일 오전 9시 30분 백악관 참모들로부터 받는 일일보고도 이날만큼은 오전 11시로 늦췄다. 또 전날에는 미셸 오바마 여사와 함께 게이츠 장관 부부를 백악관에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게이츠 장관과 이임식장에 입장하면서부터 시작해 이임식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게이츠 장관 곁에서 끝까지 에스코트했다. 연설 중간에 수시로 게이츠 장관과 눈을 맞추며 신뢰감을 드러냈다.

게이츠 장관 이임사 직후엔 오바마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참 동안 기립박수를 쳤다. 청중의 끊어질 듯한 박수소리도 오바마 대통령의 기립박수 때문에 계속 이어졌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마치 게이츠 장관이 대통령이고 오바마 대통령이 비서실장인 듯 착각할 정도였다.

‘부시 맨’이었던 게이츠 장관을 극진하게 환송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앉힌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2008년 대통령선거 후보경선 과정에서 상대방의 치부를 낱낱이 폭로하면서 감정의 골이 깊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후 ‘동지’로 다시 껴안았다. 공화당에 충성했던 게이츠 장관을 신임한 것도 오바마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었다. 국정 운영의 양대 축인 국방부와 국무부를 이들에게 맡긴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정권이 바뀌면 장관 차관 1급 등은 짐을 싸야 하는 한국의 정치풍토와는 다른 장면이었다. 펜타곤에서 게이츠 장관 이임식을 지켜보면서 오바마 대통령의 통 큰 리더십이 너무나 부러웠다.

최영해 워싱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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