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미술품 양도세가 놓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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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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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양도세가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6000만 원 이상의 미술품을 거래할 경우 매매 차익에 20%의 세금을 부과하게 된다. 미술품 양도세 시행은 번번이 좌절된 바 있다. 정부가 1990년부터 도입하려 했으나 미술계의 반발 등으로 다섯 차례나 연기됐다. ‘과세 정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20년을 미뤄왔으면 이제는 시행할 때가 됐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문화 소비의 심리와 저변 훼손

하지만 작은 충격에도 흔들리는 우리 문화의 저변을 고려한다면 쉽게 결론 내릴 문제는 아니다. 한국 영화 가운데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5편에 이른다. 반갑기는 하지만 인구 5000만 명의 나라에서 이처럼 많은 국민이 한꺼번에 같은 영화에 몰리는 일 자체는 정상이 아니다. 어느 영화가 일단 화제를 모으면 우르르 달려가 보지만 평소에는 영화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화를 고정적으로 소비해주는 기반이 취약한 것이다. 한국 문화는 그때그때 국민 심리에 따라 들썩거리기도 하고 한순간에 위축되기도 한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유럽의 종교 이탈 현상은 우리도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유럽은 기독교 국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대가 펴낸 ‘세계 기독교인 백과사전’에 따르면 내부 사정은 전혀 다르다. 교회에 등록한 교인 가운데 매주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덴마크가 3%, 스웨덴이 5%에 불과하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프랑스가 16%, 독일이 21%에 머물고 있다.

특히 영국의 급속한 종교 쇠퇴는 한국 종교계 내부에서도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영국 인구 6180만 명 가운데 교회 출석 인구는 250만 명에 그치고 있다. 신도 감소로 운영난에 빠진 교회가 속속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카페와 술집이 들어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럽에서 종교에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경제 수준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분석한다. 종교 활동은 저개발 국가 등 어렵고 절박한 지역에서 활발해지는 반면 물질적으로 풍족한 곳에서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종교가 밀려난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문화 소비와 여가 활동이다. 프랑스에서 문화는 흔히 ‘세속 종교’로 불린다. 사람들이 과거 종교에 몰두하던 것처럼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종교도 2000년 이후 일부 종교를 제외하고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종교계에서는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우리도 종교 신도나 교인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적으로는 큰 위기이지만 문화적으로는 기회이자 정부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대비해야 할 시기를 맞고 있다.

‘물꼬’ 터주는 정책이 먼저다

한국의 ‘세속 종교’는 아직 여가 활동 단계에 머물고 있다. 고속도로 입구는 금요일 저녁부터 야외로 놀러가는 사람들로 교통 체증을 빚지만 문화예술과 관련된 장소는 한산하다. 문화 소비가 활발해지면 국가 전체의 문화 수준이 향상된다.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산업의 육성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최근 들어서는 문화예술이 사회 갈등을 완화해 주는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다양한 계층에 위안을 주는 문화의 장점 덕분이다. 정부의 문화정책은 당장 위축돼 있는 문화 활동의 물꼬를 터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의 문화적 욕구와 수요는 점차 커지고 있다. 케이블TV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대한 열광적 반응은 몇 가지 사회적 의미와 함께 대중문화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세련되고 고급한 문화를 포함한 문화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일반 국민이 어릴 적부터 문화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등 상당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입시 때문에 소외돼 있는 예술교육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에 문화적 토양을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문화 소비가 일부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될 수도 있다.

미술품 양도세가 시행되면 미술계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때 반짝했으나 경기 침체에 따라 크게 가라앉은 미술품 구매 심리는 더 위축되고 작가들의 형편은 나빠질 것이다. 고가 미술품은 소재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음성 거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문화예술의 특성상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세계 각국은 문화 분야를 ‘창조 산업’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기존 산업과는 개념과 차원이 전혀 다른 중요한 분야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문화 수준에서 큰 격차가 있고 아직 쫓아가기에도 벅찬 상황이다. 이 시점에 어떤 일이 먼저인지 정부는 큰 흐름을 읽어야 한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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