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주펑]김정은 등장, 北권력투쟁의 서막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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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등장한 3남 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을 빼닮았다. 평양은 오랫동안 김일성 김정일 가족을 ‘존귀한 혈통’ ‘천재 집안’ 등으로 선전해 왔다. 이런 세뇌공세 아래 등장한 정은은 생김새뿐 아니라 옷차림이나 머리모양도 김 주석과 매우 흡사하다. 정은은 이에 기대 북한 인민에게 세습의 정당성을 어필하려는 듯하다.

19세기 공산주의 창시자 카를 마르크스는 국가권력의 세습을 강하게 반대했다. 그는 유럽 정치가 어둠에 싸인 원인 중 하나로 세습제를 꼽으며 통렬히 비판했다. 세습제는 인민이 국가권력의 진정한 근원이라는 흐름에 위배된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모든 국가권력이 인민에게 속할 때 착취와 특권이 없는 새로운 사회가 된다고 봤다. 21세기인 오늘날, 북한이 세습제를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정은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김 위원장은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는 일군의 노인을 중용해 자신의 일가에 충성하고 이후 정은의 후계구도에 위협이 되지 않는 새로운 권력집단을 세웠다. 특히 여동생 김경희와 매부 장성택에게도 무거운 임무를 맡겼다. 새로운 권력집단의 평균연령은 78세다. 고대 로마의 ‘원로원’을 본떠 어린 왕위 계승권자에게 집정 호위대를 만들어 준 게 분명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생각했든지 간에 북한 권력체제와 후계구도에는 매우 큰 불안정성이 존재한다.

우선 고령의 권력구조에는 반드시 구성원의 자연사로 인한 분열이 나온다. 앞으로 ‘어린 군주를 떠받치는’ 늙은 신하들은 자연규칙에 따라 한 사람씩 세상을 뜰 것이다. 새로운 권력 공백을 누구로 보충할 것인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북한 내부에서는 훨씬 첨예한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다.

또 정은이 비록 외모는 할아버지와 닮았지만 능력 성격 의지력까지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닮았는지, 독재적 정치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지, 2012년 북한에 ‘강성대국’의 문을 열 수 있는지 등 다른 모든 것은 미지수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키우던 20년간의 단련기간을 정은은 갖지 못한다. 그의 집권 능력과 의지가 어떨지는 오직 하늘만이 안다.

이제 막 길을 나선 정은이 북한의 방향타를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미래의 ‘북한호’는 국내외의 압력이라는 거센 파도에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위기의 배가 될 것이다. 위기국면을 장악하지 못하면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전히 매우 고립되고 봉쇄된 국가인 북한은 북쪽에서는 중국의 개방 압력을, 남쪽에서는 한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 또 미국과 일본 등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제재를 하고 있다. 상황은 이처럼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복잡하게 전개된다. 이런 상황 아래 제때 정권의 권위를 확립하지 못하고 북한 국내 경제위기가 계속 악화되면 결국 참혹한 권력 투쟁이 내부에서 발생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북한 지도자에게는 많은 기회도 존재한다. 단호한 결단으로 개방에 나서고 핵을 포기하면서 세계와 새롭게 관계를 정립한다면 정은은 북한과 한반도에 새로운 역사의 창조자가 될 것이다.

정은은 아직 왕관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가 됐다. 27세의 젊은이인 그가 현재 무엇을 생각할까? 너무도 많은 고통을 겪는 인민을 생각할까? 현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새로운 역사가 창조될지 아니면 역사의 한 시기가 철저히 마감될지가 그에게 달려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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