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지켜라]<1>기상이변 위기 맞은 페루 찬찬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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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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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 폭우에 녹아내리는 ‘흙벽돌 천년古都’

찬찬 고고유적지의 흙벽돌 성벽 원형은 본래 높이가 10m에 이른다. 왕과 귀족 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단 하나의 입구만 뚫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고요한 옛 왕국의 터를 걷다보면 문득 귀족들이 금 귀걸이와 코걸이를 찰랑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찬찬 고고유적지의 흙벽돌 성벽 원형은 본래 높이가 10m에 이른다. 왕과 귀족 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해 단 하나의 입구만 뚫어놓은 것이 특징이다. 고요한 옛 왕국의 터를 걷다보면 문득 귀족들이 금 귀걸이와 코걸이를 찰랑거리며 걷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바다에 삶을 내맡겨야 했던 이 왕국의 성벽 곳곳에서는 펠리컨(왼쪽)과 해달, 물고기 같은 해양 관련 생물을 표현한 부조 벽장식을 찾아볼 수 있다. 동그라미 문양(오른쪽)은 조류에 큰 영향을 미친 달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다에 삶을 내맡겨야 했던 이 왕국의 성벽 곳곳에서는 펠리컨(왼쪽)과 해달, 물고기 같은 해양 관련 생물을 표현한 부조 벽장식을 찾아볼 수 있다. 동그라미 문양(오른쪽)은 조류에 큰 영향을 미친 달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곳은 달의 신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사막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바닷바람과 파도에 삶을 내어맡겨야 하는 척박한 땅. 이곳에서 달은 조류를 다스리는 신이고 조물주였다. 태양보다도 센 존재였다. 하늘을 우러르면 달이 태양보다 먼저 눈에 박혔다. 15세기 말 잉카문명에 정복당하기 전까지 약 700년간 이어진 페루의 치무왕국. 태양의 신을 절대자로 추앙하던 옛 잉카인의 땅에서도 달의 신은 그렇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찬찬 고고유적지는 바로 이 왕국의 수도이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어도비)로 지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흙벽돌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막 해변의 남미 고대문명
1986년 ‘유산’ 등재와 함께 위기유산 리스트에도 올라
천막치고 플라스틱 땜질…예산 모자라 큰 성과 못거둬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570km 떨어진 도시 트루히요. 자동차가 공항을 나서자마자 황량한 모래언덕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곧 눈앞에 높고 진중한 담벼락이 나타났다. 주변의 흙모래 둔덕과 다를 바 없는 색깔과 질감이다. 하지만 매끈하게 정리된 표면은 사람의 손길이 거쳐 간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찬찬 고고유적지’라고 쓰인 다소 휑뎅그렁한 간판이 세워진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 하나였다.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폐쇄적인 건축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성벽으로 가로막힌 기다란 통로들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10m. 바람소리조차 벽에 갇힌 듯한 고요한 적막감 사이로 싸늘한 안개비만 내려앉는다. 찬찬 유적지의 대표적인 특징은 끊임없이 연결되는 커다란 마름모 모양으로 구멍 난 흙벽돌이다. 낚시 그물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직물을 짜놓은 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부드러운 다이아몬드의 흐름이 언뜻 파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당시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사방으로 펼쳐진 이 굴곡은 성벽을 제외하면 사실상 터만 남은 옛 흙모래 유적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바다가 치무왕국에 미친 절대적 영향력은 곳곳에서 확인된다. 담벼락의 부조 장식물은 펠리컨과 생선, 해달 같은 해양 관련 생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벽에 길게 늘어선 동그라미 형상은 달을 상징하는 문양이라고 했다. 장식무늬 틀에 노릇하게 부풀려 구워낸 과자처럼 양감이 도드라진다. 벽의 이곳저곳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 중에는 파도 같은 흐름을 타고 서로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나열된 물고기도 있었다. “여기 앞바다는 북쪽의 난류와 남쪽의 한류가 서로를 향해 흘러드는 엘니뇨현상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물고기 문양들이 맞서 타는 흐름이 각각 한류와 난류 같죠? 치무인은 그때 이미 엘니뇨를 알고 있었던 겁니다.” 현지 안내원 알프레도 리오스 메르세데스 씨의 설명이다.

먼 옛날 ‘타카이나모’라는 이름의 왕이 뗏목을 타고 북쪽 바다에서 홀연히 나타나 왕국을 건설했다고 믿었던 치무인. 이들에게 바다의 신 ‘니(Ni)’와 달의 신 ‘시(Si)’는 삶을 지배하는 두 기둥이었다. 달이 뜨지 않는 밤이면 달의 신이 악인을 벌하러 갔다고 생각했다. 달이 태양을 삼키는 일식이 일어나면 달의 승리를 축하하는 축제를 벌였다. 화려한 금과 은의 세공품을 만들어 몸을 치장했다. 바로 이곳에서.

전체 넓이가 한때 24km²에 이르던 것으로 추정되는 찬찬 유적지는 현재 14km²의 평지에 내부적 완결성을 갖춘 10개의 성벽 터로 남아 있다. 왕이 죽고 난 뒤 후계자가 또 다른 성을 주변에 세워 새로운 자신의 통치권을 행사한 결과로 보인다는 것이 고고학자들의 분석이다. 찬찬 유적지는 198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됨과 동시에 위기유산 목록에도 올랐다. 멸망한 왕국을 들쑤신 도굴꾼들의 유적 훼손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과거. 더 심각한 문제는 풍화다. 비라고는 오지 않던 이 지역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흙벽돌이 녹아내리고 있다. 8∼10년 주기로 찾아오던 엘니뇨현상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이제 매년 찾아온다. 점점 양이 늘어나는 빗물에 흙벽돌은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허물어져갔다. 물이 빠지는 하수 시스템이 없는 옛 왕국은 빗줄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기유산 등재 이후 복구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현장에는 흙벽돌 유적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유산 복구를 위해 투자된 자금은 850만 달러.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들도 수시로 오가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페루 문화재청은 찬찬 유적지 복구 및 보존을 위한 10년 기한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시행 중이다. 현재 이곳에 상주하는 복구 인력은 300여 명. 고고학 전문가 15명이 팀을 이끌고 있다.

유적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프로그램과의 연계도 꾸준히 시도 중이다. ‘찬찬 시민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이 유적지에 와서 직접 흙벽돌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지금까지 2만2000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2000년에 만들어진 마스터플랜의 집행 자금은 페루 경제가 성장세를 탄 2007년이 돼서야 지원되기 시작했다. 유적지의 상당 부분에는 여전히 값싼 땜질식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흙벽돌을 본떠 위에 살짝 덧댄 황갈색의 플라스틱 벽돌이 대표적이다. 벽의 부조문양이나 마름모꼴 장식 일부에 이 플라스틱 벽돌이 다른 색깔과 질감으로 어색하게 섞여 있다. 엔리케 산체스 페루 문화재청(INC) 트루히요 담당 국장은 “기후변화로 엘니뇨현상이 잦아지면서 폭우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런 땜질식 처방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는 떼어낼 예정이라는 플라스틱 벽돌의 수명은 앞으로 몇 년일까. 현지 전문가들은 이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짭짤한 바닷바람 섞인 빗물이 멈추는 날까지 어쩌면 계속…. 사라져가는 이 거대한 모래성은 그렇게 환경과의 조용하고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신전 속에 또 신전이… 베일 벗는 5겹 ‘달의 신전’ ▼

달의 신전 ‘와카데라루나’의 벽에서 발견된 전사들의 부조 문양.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방패나 적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트루히요=이정은 기자
달의 신전 ‘와카데라루나’의 벽에서 발견된 전사들의 부조 문양.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에는 방패나 적의 잘린 머리를 들고 있는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트루히요=이정은 기자
처음엔 그냥 흙벽돌 한 장이었다. 이상하게 붉었다. 누군가 칠을 한 흔적임에 틀림없었다. 페루의 고고학자 리카르도 모랄레스 씨는 그 지역을 조심스레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91년 시작된 본격적 발굴 작업. 달의 신전 ‘와카데라루나(Huaca de la Luna)’가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유적은 희한했다. 무너진 벽 속에서 또 하나의 신전 외벽이 나왔다. 화려하게 채색된 흙벽돌 안으로 5개의 신전이 양파껍질처럼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신전마다 100년의 시간차가 났다. 한 세기가 지날 때마다 신전 위에 또 다른 신전을 겹쳐 올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500년간 진행되며 32m 높이의 신전을 만들어낸 셈이다.

페루 ‘찬찬 고고유적지’에서 남쪽으로 8km가량 떨어진 옛 모체왕국(Moche Kingdom)의 터. 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와카데라루나’는 400∼600년 번성했던 모체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극사실주의로 평가받는 벽 무늬의 묘사가 대표적이다. 어지러울 만큼 벽을 가득 메운 전갈, 뱀, 거미, 새, 고양이 같은 동물 그림은 정밀하기 이를 데 없다. 이 신비로운 신전은 아직도 발굴이 진행 중이다. 앞선 시대의 신전들이 흙벽돌에 갇혀 있었던 덕분에 문양과 색채가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에 고고학자들은 주목하고 있다. 마리아 이사벨 미얀 데 치아브라 유네스코 페루 국가위원회 사무총장은 “예산이 부족해 발굴 장비와 연구 등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선진국의 협조로 국제적 차원의 작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사진 트루히요=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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