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창원]사라진 日노인들, 어디로 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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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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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일본 도쿄(東京) 아다치(足立) 구의 한 가정집에서 111세 노인이 사망한 후 30년이 넘도록 집 안에 방치된 엽기적 사건이 발생해 일본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시체가 백골로 변하는 동안 가족들은 한 번도 그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이번에는 도쿄의 스기나미(杉병) 구에서 113세 할머니가 이미 수십 년 전에 행방불명된 사실이 밝혀졌다. 주민등록상 동거인으로 돼 있던 79세의 딸은 “(어머니는) 시골의 남동생과 살고 있는 줄 알았다”고 했고 남동생은 “집을 나간 후 소식이 끊긴 지 오래”라며 책임을 미뤘다.

상황이 간단치 않다고 판단한 일본 정부는 황급히 100세 이상 고령자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아직 일본 정부의 조사는 진행 중이지만 아사히신문 최신 보도에 따르면 지자체에 주민등록이 돼 있음에도 소재가 확인되지 않는 이른바 ‘행불 고령자’가 전국에 걸쳐 279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는 이미 가족들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는데도 경찰과 지자체가 정보를 공유하지 않아 호적에만 올라있는 유령노인도 있다. 또 고령자 본인이 사망했음에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가족들이 대신 노인연금을 받아 쓰는 비양심도 발각됐다.

심각한 것은 사라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절반 이상이 가족과 함께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췄고 가족들은 이들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언론은 70세 이상 노인까지 확대해 조사하면 소재와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행방불명 노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장수국가 일본의 현주소를 개탄하고 있다.

행방불명된 노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노인 문제 전문가들은 이들 대부분이 거리의 노숙인으로 전락했거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객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NHK 보도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현재 전국의 노숙인은 1만2000여 명으로 이 가운데 상당수가 70세 이상 고령자로 추정된다. 가족과의 불화 또는 금전적인 문제로 가출한 후 이름을 바꾼 채 사회적으로 고립돼 살아가다 돈이 떨어지면 노숙인으로 전락하고 결국 신원 미상으로 사망에 이르는 패턴이 정착되고 있다.

내 일이 아니면 섣불리 나서려 하지 않고 타인과 인연 맺기를 꺼리는 일본의 ‘무연(無緣) 사회’가 가족 해체를 낳고 이는 다시 사회적 약자인 노인의 방치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고령자들의 사회적 고립이 경제적 빈곤과 관련돼 있다는 점이다. 일본 메이지대의 조사에 따르면 홀몸노인의 30%는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고립돼 있다. 또 이런 노인일수록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홀몸노인이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빈곤한 홀몸노인일수록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운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어찌 보면 이번 일본의 고령자 행방불명 사건은 가족에 복지지원을 의존해 온 일본식 사회보장모델이 한계를 드러낸 것인지 모른다. 복지국가로서의 기능이 약한 일본에서는 노인 및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을 가족이 알아서 해결해 왔지만 이제는 가족에 복지를 의존하는 사회모델이 기능하지 않는 실정이다.

가족이나 회사가 생활안전망이 돼 국가의 사회보장제도를 대신해 온 한국식 복지모델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는 한국이 이웃나라 일본의 ‘고령자 행불사건’을 엽기적 일회성 사건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개운치 않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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