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이명옥]新예술가들이 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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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계의 두드러진 변화를 손꼽는다면 새로운 유형의 예술가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新)아티스트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선배들이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전통적인 예술관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졌다. 예술의 세속화를 부추기는 불온한 언행으로 순수미술계를 오염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한편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신아티스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와 부정적인 평가가 동시에 나오는 셈인데 이들이 미술계에 미치는 영향이나 변화를 이해하려면 먼저 전통적인 예술관에 대한 사전정보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다음과 같은 예술가를 예술가의 전형이라고 믿었다.

예술에 헌신하는 고독한 천재, 꿈 이상 도덕과 같은 형이상학적 가치를 제공하는 철인(哲人), 대중적 취향이나 상업성에서 초연한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 한마디로 예술이라는 종교에 헌신하는 성직자와 같은 예술가를 이상형으로 여겼다. 예술가의 영원한 멘터인 고흐의 편지를 읽으면 이를 좀 더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화가는 단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희생과 자기 부정, 상처받은 영혼으로 작품을 제작한다.”(1888년 7월 25일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고상한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예술혼을 불태운다는 낭만적인 예술관을 전복하는 신아티스트의 특징은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미술을 명성이나 출세, 부와 같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기업인에 맞먹는 탁월한 마케팅과 홍보능력을 발휘하고 의도적으로 스캔들을 일으키는 충격요법을 인기전략으로 구사해 블루칩 작가로 성공한다. 대표적인 예술가는 미술계의 두 악동으로 불리는 데미언 허스트와 제프 쿤스이다.

‘고결한 영혼’ 인식 깨는 도발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 두 작가는 세속적인 욕망에 초연한 예술가를 경악시키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른다. 예를 들면 허스트는 2008년 영국 소더비 경매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해 모두 낙찰시키는 기염을 토했다. 일찍이 작가가 갤러리를 통하지 않고 직접 경매에 참여해 떼돈을 번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미술시장을 혼란에 빠뜨린다는 격렬한 비난을 오히려 즐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12개가 넘는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이며 자산관리 매니저도 두고 있다. 영국의 선데이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총자산은 10억 달러로 추정된다. 한편 쿤스는 비키니를 입은 미녀들과 광고에 출연하고, 포르노스타인 아내 일로나와의 성행위 장면을 묘사한 작품을 전시하는 등의 초대형 스캔들에 힘입어 일약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다.

둘째로 신아티스트는 대중의 눈높이와 취향을 고려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른바 엔터테이너형 예술가들이다. 대중적인 화가의 대명사는 미국의 토머스 킨케이드이다. 그는 2007년 기준으로 1200만 점 이상의 그림을 팔았다. 연간 판매액이 1억 달러에 이른다. 킨케이드의 그림은 크리스마스카드나 우표, 퍼즐 맞추기 등 아트상품으로도 불티나게 팔려 나간다.

미국에는 그가 그린 그림 속 풍경을 똑같이 재현한 테마 파크가 생겨나 관객몰이에 나설 정도이다. 하지만 미술전문가들은 그의 예술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대중의 취향에 영합한 상업주의 작가로 분류한다. 순수 미술계가 상위가치로 여기는 혁신성이나 독창성을 그의 그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신아티스트는 신개념의 제작방식을 선호한다. 자신은 아이디어만 제공하고 다른 사람에게 작품을 만들게 한다든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여러 사람과 공동으로 제작하고, 사용하는 물건을 작품 대신 출품하기도 한다. 덴마크 출신의 설치예술가 올라푸르 엘리아손은 건축가, 과학자, 기술자 등 30명에 이르는 전문가와의 협업을 통해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설치작품(인공폭포, 인공태양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구가하는 예술가가 되었다.

경쾌한 실험, 미술의 진화일까

한편 영국의 설치예술가인 트레이시 에민의 ‘나의 침대’라는 작품의 소재는 물감이 아닌 매트리스, 시트, 베개, 속옷, 담배꽁초이다. 그녀는 작품을 직접 제작하는 대신 자신의 침대를 통째로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했다.

아직 국내에는 서구의 스타 예술가처럼 충격요법으로 엄청난 부와 명성을 거머쥔 예술가는 없지만 튀는 전략을 구사하고 대중과 스킨십하고 매니저를 두는 기업가형 예술가는 점차 늘고 있다. 한국형 신아티스트가 조금씩 늘어난다고 말할 수 있다.

순수예술의 특권인 독창성, 자율성, 숙련된 기능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심각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예술가도 생겨나고 있다. 물론 예술가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참을 수 없는 예술의 무거움을 깃털처럼 가볍게 전환시키는 신아티스트가 미술사에 어떤 족적을 남길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이들이 미술계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과연 미술도 진화하는가?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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