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한국 교육의 聖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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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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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는 ‘성역(聖域)’이 너무 많다. 그 내용을 드러내는 게 교육에 해롭다는 이유에서 감히 근접하지 못하게 철조망을 쳐놓은 곳들이다. 2004년 이명희 공주대 교수 등은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의 결과 자료를 활용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가 언론에 크게 보도되자 정부는 이 교수를 ‘자료 불법 유출’ 혐의로 형사 고발했다. 전국 초중고교 학생들의 학력 수준을 파악하기 위한 학업성취도 평가 자료는 당시로선 중대한 기밀이었다. 정부는 이 교수에게 ‘성역 파괴 죄’를 물은 것이다.

폐쇄적 운영이 부른 불평등 고착


또 하나의 성역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학교별, 시도별 성적 결과다. 4년이 넘는 법정 싸움 끝에 대법원은 올해 2월 ‘수능 원 자료를 공개하라’고 판결해 공개 쪽으로 정리됐다. 하지만 수능이 시작된 1994년 이후 어느 학교, 어느 지역의 수능 평균 점수가 높고 낮은지는 줄곧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이들 성역의 벽은 상당 부분 허물어진 상태다. 일부 세력으로부터 ‘일제고사’라고 맹공을 받았던 학업성취도 조사는 시도별 결과가 이미 공개됐고 내년부터는 학교별 성적이 발표될 예정이다. 수능 성적 역시 지역별 자료가 공개된 데 이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학교별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개에 극력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 자료가 드러나면 한국 교육이 당장 무너질 것처럼 선전했지만 그런 조짐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학교 정보와 관련된 성역 이외에 학교 자체가 성역화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정규 수업 이후 학교에서 외부 강사들이 강의하는 ‘방과 후 학교’는 ‘학교를 학원화한다’는 반발에 부닥쳤다. 학교는 신성한 공간이므로 다른 기능을 일절 들여서는 안 된다는 논리였다. 10년 이상 논의만 무성했던 교원평가제의 표류는 한국 학교의 폐쇄적 면모를 널리 알렸다. 학부모 참여가 활발한 외국 학교와는 달리 우리 학부모들은 학교를 거의 방문하지 않는다. 학교를 찾는 일이 학부모와 교사 모두에게 부담스럽다는 인식 때문이다. 학교의 고립을 자초하는 이런 일들이 ‘교육적’이라는 한마디 말로 정당화되는 나라가 한국이다.

우리 교육에서 가장 큰 성역은 역시 ‘평준화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평준화가 교육에서 평등을 이끌어 내는 데 효과적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평준화에 조금이라도 손을 대는 일에 펄쩍 뛰는 사람이 많다.

선진국에서도 공립학교의 경우 교육당국이 임의로 학교 배정을 하고 있으나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학생들을 강제 배정하는 대신에 국가가 공교육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하려고 여러 보완책을 가동한다. 학업성취도 조사 결과 실적이 나쁜 교장과 교사를 문책하고 학교 문을 닫게 하기도 한다. 학교 정보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학생에게는 부분적으로 학교 선택권을 부여한다. 평준화라는 틀 자체가 나태함을 부를 수 있는 제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비리도 ‘고인 물’이 원인

우리는 학교의 중요한 정보들을 봉쇄해 놓고 배정해 주는 대로 가라고 요구한다. 어느 학교가 공부를 잘 가르치는지, 못 가르치는지에 대해서는 ‘서열화’ 우려를 내세워 눈을 감아 버린다. 그 결과 교육의 품질은 학교마다, 지역마다 제각각이 됐고 집값 비싼 곳으로 이사 가는 것만이 확실한 대안이 되고 말았다. 공교육이 잘못되면 가난한 학생은 더 기댈 곳이 없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평준화는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구조 이외에 어느 것도 아니다.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길목마다 깜깜한 ‘성역’으로 가로막힌 한국 교육에서 각종 비리가 만연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밖에서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활짝 개방하지 않으면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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