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유형종]클래식 공연 보러 어디까지 가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4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2008년 조사한 ‘문화소비 유형의 인구학적 분포’에 따르면 선호하는 문화활동으로 클래식 음악을 꼽은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15개 조사 대상 중에 끝에서 두 번째였다. 물론 여기서 선호한다는 의미는 자기 돈을 들여 공연장을 찾거나 음반을 구입한다는 적극적인 의사표시로 해석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인구 중에서 겨우 60만 명 정도가 클래식 시장을 형성한다는 얘기니 참으로 빈약한 결과다.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수많은 공연장이 특히 지방자치제 시행 이후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는데 무슨 수로 어마어마한 좌석을 채운단 말인가! 거액을 들여 고급 공연장을 지어놓고 결국 다목적 홀이나 엉뚱한 용도로 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제는 짓기보다 채우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다.

상황은 좋지 않다. 젊은 애호가가 계속 나와야 하는데 청소년이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방송매체에서는 얼마 되지 않는 예술프로그램조차 시장논리상 심야에 편성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학교에서도 예술교육을 특정 학기에 몰아서 진행하여 다른 학기에는 부담을 없애자는 둥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아이디어가 불거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박물관(2.2%)과 미술관(1.9%)은 음악과 마찬가지로 예술 또는 인문학의 범주인데 왜 더 높은 순위에 있는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 공연장 대부분 최신 시설

전시예술은 관람료 부담이 음악회보다 덜하다. 또 정해진 규칙보다는 관객의 자유의사에 따라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으며 시간의 구애를 덜 받는다. 결국 클래식 음악도 티켓 부담을 줄여야 하고 무대와 객석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하며 사전교육 프로그램, 해설책자 무료 제공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실행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공연장이 앞장서야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정책적인 지원도 있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 공연장은 대부분 새로 지어져 시설이 수준급이니 이를 활용하여 많은 관객을 참여시킬 만한 페스티벌을 더 많이 개발해도 좋다. 물론 저변 확대를 위한 새로운 실험과 서비스가 이루어져야 의미가 있다.

아직도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전국 각지의 음식을 파는 임시천막부터 떠올리는 분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솔직히 그렇다. 신군부 집권의 암울하던 시절에 여의도에서 며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벌어진 정책적 축제 때문에 워낙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버린 탓도 있다. 자유분방하게 먹고 마시고 잠시 긴장의 끈을 풀어버리는 것이 축제의 여러 기능 중 중요한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런 인상 때문에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지자 여러 축제가 취소되거나 연기되는 것이리라.

다행히 4월과 5월로 예정된 클래식 음악 페스티벌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기간과 장소를 정해 일관된 주제로 열린다는 의미의 페스티벌로서 방탕한 연회를 뜻하는 오르지아(orgia)와는 분명히 구별되니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 용인되리라 믿는다. 전국의 오케스트라가 실력을 겨루는 예술의 전당 교향악 축제, 세계적 수준의 음향을 자랑하는 실내악 공간을 활용한 세종문화회관의 체임버 페스티벌, 여러 공연장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서울 스프링 페스티벌이 주목해야 할 음악축제다. 올해에는 성악 부문이 진행되는 서울 국제음악콩쿠르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마니아에게는 경연의 재미를 만끽할 최고의 페스티벌이다. 먹고 마시는 축제가 아니라 머리와 심장을 고양시켜 재충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문제는 여전히 고급 음악 페스티벌을 즐기려면 외국에 나가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사실이다. 작년엔 경제위기 탓에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었음을 실감했지만 경제적 여유가 있는 최상위 계층에서 해외 페스티벌 순례는 한 해의 중요한 일정으로 자리 잡았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어차피 입출국이 일상화된 글로벌 시대에 기왕이면 공연까지 고려하여 다녀온다면 일거양득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음악시장부터 제대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음악시장부터 키워줬으면

이번 겨울올림픽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듯이 우리는 한다고 마음을 먹으면 해내는 역량이 있는 민족이다. 우리가 피겨에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낼 수 있다고 누가 믿었겠는가.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는 국내 지도자의 가르침만으로도 놀라운 성적을 올렸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공부한 경력만으로는 해외 유수의 콩쿠르에서 상위 입상을 할 수 없다던 장벽이 무너진 지는 벌써 10년쯤 되었고 요즘엔 입상 빈도가 더욱 잦아졌다. 음악교수법이나 커리큘럼이 유럽, 미국 수준을 거의 쫓아갔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벌어지는 페스티벌 역시 관객이 애정을 갖고 나서서 취약점을 솔직하게 지적하고 질적 향상을 독려한다면 곧 세계 수준에 오를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과 창의적인 서비스가 있는 공간이라면 새로운 청중이 찾아드는 것을 기대해도 좋다.

유형종 음악칼럼니스트·무지크 바움 대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