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들의 사진사랑 이야기]<3>심재설 LS엠트론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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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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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밖에 모르던 그에게 혼을 빼앗길 만한 취미가 생겼다. 사진이다.
주말이 가까워지면 카메라를 만지는 손놀림이 바빠진다.
50대 후반의 나이가 무색하게 청춘인 양 가슴 설레면서 이번엔 어디로 촬영을 갈까 고민에 빠져본다.
카메라를 메고 나선 들녘에는 새 봄의 푸름이 막 돋아나고 어느새 따스해진 공기는 포근하게 그를 감싸며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 넣어준다. 살 것 같다.
이런 매력에 빠져 본인의 표현처럼 사진과는 ‘끊을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되고 말았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에선 ‘사진경영’까지 도입했고 지인들에게 사진 달력을 선물하는 등 공공연하게 사진과의 다양한 애정행각을 과시한다.
그는 심재설 LS엠트론 사장이다.
지난 세모에 자신이 세 번째로 제작한 달력 ‘자연과의 만남‘을 해외 바이어, 협력업체 및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달력을 액자로 만들어 집무실이나 집 거실에 걸어두는 사람들도 있었고, 달력이 ‘예술’이라며 추가로 요청하는 사람도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모두가 좋아한 그의 달력은 이른바 ‘사진경영’의 한 부분으로 성장경영, 예측경영과 함께 심 사장의 경영철학 이 되었으며 인간관계 소통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서울 창덕궁에서 ‘봄 냄새’를 찍던 그를 만나 부장 시절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사업을 맡기만 하면 흑자로 만들어 ‘미다스의 손’으로도 불린 그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배경부터 들어봤다.》

“내게 사진은 취미이자 직원-바이어와 소통하는 도구”


―사진은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고교 때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35mm ‘캐논 QL’이라는 카메라가 생겼어요. 학교에 사진반이 있었는데 사진반장도 하면서 암실작업도 배우고 직접 흑백 롤필름을 감아 쓰면서 인화까지도 했어요. 그 당시 동아일보에서 주관하는 ‘동아국제사진살롱’ 사진은 훌륭한 교과서였죠. 사진에 관한 기초적인 것은 그때 배웠고, 대학 때는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학교 도서관에 있는 사진 관련 책 40여 권을 모두 읽었어요. 사회에 나와서는 민물낚시 10년, 바둑 아마 3단 정도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까지 다양한 취미생활에 몰두했습니다.”

―2004년 다시 카메라를 잡은 이유는….

“제가 얼리어답터인데 출장길에 공항 면세점에서 디지털카메라를 본 거예요. 그땐 몰랐는데 이상하게 출장기간 내내 그 카메라 생각이 나지 뭡니까.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남대문에 가서 그때 본 ‘캐논 10D’라는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고 말았죠. 디지털카메라가 주는 즉각적인 재현, 이미지 변환의 수월성 등 필름카메라보다 다양한 편리함 때문에 쉽게 빠져들었습니다. 고교 때 불을 지폈다가 가슴에 묻어둬야 했던 사진에 대한 불씨가 다시 타오른 것이죠.”

―사진 장르 중 특히 풍경사진 촬영에 몰두하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제가 사진을 다시 시작하면서 인물사진, 스튜디오사진 등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다양한 장르의 사진을 찍어 봤어요. 모두 장단점이 있었는데 제겐 풍경사진이 맞았습니다. 위대한 자연의 풍광 속에서 쉴 수도 있고 우연의 시공간에서 자연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풍광은 사진 이전에 무엇보다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풍경사진의 진정한 매력은 무엇입니까.

“풍경은 일 년 사시사철 한 번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적이 없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있는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기에 거짓이 없죠. 게다가 사진 앵글이 몇 cm만 벗어나도 그 사진의 느낌이 달라집니다. 같은 데 갔다고 똑같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찍었던 곳이라도 또 다른 장면을 찍기 위해, 갔던 곳이라도 또 가게 됩니다.

―인상 깊었던 촬영지와 사진 찍으면서 생긴 일화도 소개해 주시죠.

“일 년에 두어 번 휴가를 이용해 해외 촬영을 나가는 편이며 출장 시에는 주말과 같은 여가 시간이 생길 때 사진작업을 합니다. 해외는 20 곳 정도 다녀봤고 국내는 이곳저곳을 다 다닙니다. 인상 깊었던 해외 출사장소로는 일본 홋카이도의 비에이, 중국 신장 우루무치, 타클라마칸 사막, 중국 지린성의 무송도, 국내는 충북 옥천 용암사, 광주 세량지 등이 생각납니다. 비에이는 언덕이 좋은 곳인데 언덕을 바라보며 조금만 움직여도 풍경의 변화가 다양해 사계절 그림이 되는 곳이에요. 타클라마칸 사막은 한번 들어가면 연락할 길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차 두 대가 들어가서 한 대가 고장 날 경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송도는 얼마 전에 갔는데 영하 40도의 날씨 탓에 필름이 약간의 충격에도 유리처럼 부서져 버리고 말더군요. 용암사는 안개가 멋있는 곳인데 그렇게 갔건만 아직 맘에 드는 사진을 건지지 못했어요. 세량지는 봄철 벚꽃을 예쁘게 찍을 수 있는 곳입니다.

―풍경사진에 대한 노하우가 있다면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선 광선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광선의 방향이 사진의 감성을 좌우하니까요. 아침저녁 해 뜨거나 지기 1, 2시간 전이 풍경사진을 찍는 데 최적의 시간대입니다. 예전에는 사진들이 맘에 들지 않아 크로핑(사진을 필요한 부분만 잘라 쓰는 기법)으로 커버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크로핑하지 않고도 맘에 드는 사진을 얻는 것으로 봐선 실력이 조금 늘었다는 느낌입니다.”

아름다운 자연에 매료 풍경 몰두
갈수록 환경파괴 심각성 체감
사진통해 열정 끈기 상상력 배워


―풍경사진 찍으면서 깨닫는 것이 있다면….

“사진을 찍다 보면 지구환경의 파괴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일본 홋카이도의 경우 10년 전에는 일 년의 반은 붉은 노을로 풍경이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순간을 보기 힘들어요. 또 그곳은 유빙도 장관이었는데 지금은 2∼3년에 한 번씩만 오고 얼음 규모도 줄었습니다. 국내도 10년 전에는 학이 놀던 곳에 지금은 학이 안 와요. 해남 하면 가창오리 떼 촬영장소로 인기였는데 이제는 해남까지 오지 않고 금강 하구나 정읍의 동림지까지만 오죠. 풍경사진을 찍으면서 지구온난화나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회사에서 사진을 활용한다는 ‘사진경영’은 어떤 것입니까?

“사진경영은 성장경영론, 예측경영론과 함께 제가 주장하는 경영방식 중 하나입니다. LS전선에서 분리되기 전부터 우리 기계부문은 만성적자에 시달려 늘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어요. 그랬기에 성장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선 정확한 시장 예측이 필요했죠. 회사 벽에는 ‘혁신으로 비상(飛上)하라’,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같은 남들이 보면 다소 격하게 보이는 문구들이 붙었습니다. 이를 삭막하게 그대로 회사 구성원에게 구호처럼 전달하는 것보다 부드러운 감성으로 전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를 전할 감성 매개체로 사진을 끌어들인 거죠. 제가 사진을 좋아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업무에서 사진이 여러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가 된 셈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공격적이고 직설적인 CEO 메시지를 그대로 받는다면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를 멋진 사진과 함께 보내면 훨씬 수용성이 좋은 감성 메시지가 됩니다. 교감이 좋아지면서 사내 분위기도 부드러워집니다. 국외 바이어 몇 분과도 사진으로 교감을 나누고 있는데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관계가 구축되기도 합니다. 실제 달력을 만들어 국내외 바이어, 협력업체, 회사 임직원에게 선물하기도 하고 사보에 싣는 CEO 메시지는 사진과 함께 싣고, 취미 없는 직원들에겐 사진 찍기를 권장해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풀도록 독려하며 해외 지사나 바이어들에게 사진 이야기를 하면서 사업상 난제들을 풀기도 합니다.“

―그래도 사진을 찍을 때나 회사 경영에 임하면서 여전히 열정, 끈기, 혁신과 같은 비장한 단어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현재 제가 맡고 있는 사업들은 기존에 어려웠던 분야라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야만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지금도 사진 찍을 시간이 없어서 한번 나가면 전쟁 치르듯 미친 듯 밥도 안 먹고 돌아다니니까 젊은 사진작가들도 놀라요. 그러다 보니 저는 덕유산 일출을 찍기 위해 영하 30도의 산 정상에 꼬박 서서 5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찍으려다 길을 잃고 헤맨 적도 있어요.

한 장의 사진을 위해 셔터를 수백 번 누르는 열정, 원하는 빛을 얻기 위해 끝없이 기다리는 끈기, 평범한 사물이라도 남들과 다르게 보기 위한 상상력을 사진을 찍으면서 배웠고 이는 내 인생의 규범이 되었는데 직원들도 배웠으면 했습니다.”

―부부가 사진을 같이 하니 좋겠습니다.

“제가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하자 아내도 문화센터에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주말에 국내 촬영 갈 때는 꼭 함께해주는 정말 좋은 동지입니다. 훗날 시간 여유가 생기면 그동안 일 때문에 잘 못해준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 1년, 홋카이도 1년, 우루무치에 1년 정도 있으면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 전시회도 하고 싶어요. 부수적으로 ‘동행’이라는 주제로 부부든 새 두 마리든 풍경 속에 담고 싶어요.”

―사진장비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진 장비로는 캐논 제품을 선호하는데 6대의 디지털카메라, 3대의 필름카메라, 14mm 광각부터 600mm 망원까지 다양한 초점거리의 렌즈 20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콘탁스와 핫셀브라드 카메라 1대씩을 제외하면 카메라에서부터 렌즈에 이르기까지 캐논 카메라로 구성했습니다. 캐논 특유의 부드러운 화질과 용도에 맞는 다양한 제품이 있어서 일괄 시스템을 갖추기에 편리했죠. 사진장비는 아내와 같이 써서 그런지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앞으로도 사진사랑은 계속 되겠네요.

“제 딸도 사진사랑은 평생 갈 것 같다고 합니다. 골프와 사진 중 택일하라면 저는 주저 없이 사진이에요. 골프는 나이가 많이 들면 못하지만 사진은 평생 할 수 있어요. 게다가 후세에도 뭔가를 작품으로 남길 수가 있잖아요.”

그는 입사 때부터 ‘이 회사는 내 회사’라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다고 한다. 내 회사니까 내 일처럼 지독하게 일하고 오늘 그 자리에 오른 심 사장. 그렇기에 일만큼 사진도 전투를 치르듯 치열하고 끈기 있게 한다. 그것이 본인의 스타일과 맞고 자기 인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휴식과 재충전의 숨구멍인 사진을 일에 녹여 사진경영까지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다.

본인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맘껏 사진 찍기를 소망하지만 그것은 팍팍한 현실에서 오는 희망사항이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카메라 셔터만 누른 손은 생각보다 매끈하다. 하물며 회사 사장의 손은 말해 무엇 할까. 하지만 악수를 하며 만져본 심 사장의 손은 놀랄 정도로 거칠었고 그 손은 ‘나는 뭐든지 부지런히 하고 있어’라고 얘기하고 있었다.

틈틈이 사진을 찍고 즐기는 현재가 그의 홈페이지 제목 ‘해피투게더’(www.htogether.com)처럼 그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다. 홈페이지에는 심 사장이 각고 끝에 얻은 사진이 있으며 게스트 갤러리에는 회원 가입만 하면 사진을 올릴 수 있어 누구나 사진으로 심 사장과 교류할 수도 있다.

사진을 통해 얻는 에너지와 사진경영도 실천하는 심 사장. 그런 치열한 노력 덕분인지 LS엠트론은 2009년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이익을 창출하는 등 비상경영을 벗어나 올해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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