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있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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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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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 김길상 그림 제공 포털아트
동심, 김길상 그림 제공 포털아트

커피숍 구석자리에 젊은 남녀가 심각한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여자는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남자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습니다. 여자가 힘겨운 어조로 입을 열었습니다. 왜 있는 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남자가 격앙된 어조로 응대했습니다. 나도 감정이 있는 인간인데 그걸 어떻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남녀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 때문에 그런 대화를 주고받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커피숍을 나와 인도를 따라 걷는 동안 남녀의 대사가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구체적인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둘 사이에 오해가 있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서 생긴 오해, 혹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서 생긴 오해.

생각해 보니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꾸미지 않고 세상만사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상에는 아무런 갈등과 쟁투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은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감촉을 느끼고, 혀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는 순간 곧바로 오감이 자극을 받아 자기중심적으로 계산하고 따지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세상만사에 대한 반응은 본능적이고 이기적으로 작동해 자신을 세상의 유일무이한 척도로 삼으니 남과 대립하고 대결하는 양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가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뛰놀며 세상만물과의 친화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눈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다닌다는 말을 믿었고, 정월 대보름 전날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센다는 할머니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그때는 세상이 동화 같았고 세상 사람이 모두 동화 속의 인물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성장하는 동안 세상을 배우고 세상을 닮아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심성은 사라졌습니다.

세상만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성의 이면에는 뒤틀린 배경의식이 있습니다. 예컨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지적하는 게 바로 배경의식입니다. 남이 가진 것, 남이 성취한 것, 남이 이룬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성은 불신과 비관의 뿌리를 동시에 키워 인간관계의 토양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세상의 평화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도둑의 눈에는 세상사람 모두가 도둑으로 보이고 부정부패에 길들여진 사람의 눈에는 세상만사가 은밀한 뒷거래로 보일 것입니다.

관자재(觀自在)라는 말은 마음이 맑아 세상을 보는 데 걸림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세상만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상태, 거기서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와 중생구제가 발현합니다. 예수도 ‘눈은 몸의 등불이니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 눈이 보는 세상, 내 마음이 만들어낸 세상입니다.

작가 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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