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테마 에세이]커피<2>조연호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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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맛보는…

한 사람에게 연정을 품고 있을 땐 그 사람에게 ‘커피나 한잔하자’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람과 헤어질 때 맨 마지막으로 함께 하는 건 커피 마시기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는 두근거리고 설레며 후자는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그 사이에 커피가 있다.

만남과 이별의 자리에 빠져서는 퍽 섭섭한 이 음료는, 그렇기에 ‘관계’에 대한 음식이다.

관계 혹은 연애감정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커피는 정서적인 무엇이 아니라 그저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음료일 것이다.

어린 내게 커피는 영양가 없고 온통 쓰기만 하여 반드시 설탕을 넣어 먹어야 하는 이상하고 검은 물이었다. 쓴 것을 견디기 위해 단것을 넣어야 하다니. 몹시 써서 감초를 넣지 않고는 마실 수 없는 한약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한약처럼 몸을 보하기 위한 것도 아닌데 설탕까지 넣어가며 맛을 감내한다는 것은 어린 내게 도무지 합리적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미각과 취향은 점점 미세하고 고급스러워져서 지금은 커피에 설탕과 커피크림까지 다 넣어서 마시는 것이 왠지 촌스러운 세상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쓰기만 한 ‘악마의 물’을 예쁜 잔에 담아 예쁜 수저로 휘휘 저어 우아하게 마시며 얘기하는 사람들이 우스꽝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 아이는 이제 하루에 몇 잔이고 아무렇지 않게 그 검은 물을 마실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혼자서도 마시고, 아는 사람과 혹은 모르는 사람과도 마시며, 심지어 뭘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도 마신다. 그리고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지 않으면 왠지 허전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도, 관계도 위치가 중요한 법이지만 커피만큼 놓이는 장소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 것도 드물 것이다.

커피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혼자 마시는 커피 역시 나와 나의 상념들 사이에 놓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감성과 정서를 마신다는 말과 같은 말이며, 나와 만나기 혹은 타인과 만나기를 돕는 매개체인 것이다. 그런 관계 속에서 어떤 커피는 슬프고 어떤 커피는 기쁘다. 또 어떤 커피는 설레고 어떤 커피는 무덤덤하다. 하지만 그것은 커피가 차갑거나 뜨거워서가 아니다. 커피의 온도는 언제나 그것을 권하고 받아드는 사람이 가진 마음의 온도일 것이니까.

헤어지려는 사람 앞에 놓여 있던, 그 사람보다 더 쓸쓸해 보였던 커피 잔이 문득 떠오른다.

조연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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