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12년째 무분규 노사협상 타결 김성호 현대重노조위원장

  • 입력 2006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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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사측과 12년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타결한 김성호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무분규 타결이 가능한 근본 이유는 외환위기 때를 포함해 창사 이후 33년간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지난달 26일 사측과 12년 무분규로 임금협상을 타결한 김성호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은 “노조의 무분규 타결이 가능한 근본 이유는 외환위기 때를 포함해 창사 이후 33년간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말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노조사무실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회사 관리직 사무실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노조 간부들이 단체로 입는 투쟁의 상징물인 ‘빨간 조끼’는 사무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달 26일 김성호(49) 노조위원장과의 인터뷰를 위해 찾은 현대중공업 노조사무실의 인상은 한마디로 ‘충격적’이었다. 현중 노조가 국내 강경 노동운동을 주도한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의 노동투사들이 모여들어 복면에 쇠파이프를 바닥에 끌고 다니며 취재 기자들에게도 험상궂게 굴었던 노조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12년 무분규로 회사 측과 임금 및 단체협상에 합의했다. 합의서 조인식을 끝낸 뒤 만난 김 위원장의 얼굴에는 홀가분함과 함께 앞으로도 상생의 노사관계를 이어가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였다.》

―임단협 12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축하한다.

“매우 기쁘다.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신뢰했기 때문에 12년 무분규가 가능했다. 지난해 12월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노조 간부들과 함께 매주 수요일에 특정 부서를 순회하며 작업환경과 안전사고 위험 등을 일일이 점검해 회사 측에 개선을 요구하는 ‘현장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건의한 400여 건 가운데 100건은 즉시 해결됐다. 회사 측과 상시 협상창구를 개설해 놓고 애로점을 해결한 것이 조합원들이 집행부를 전폭적으로 신뢰해 준 계기가 됐다고 본다.”

―현대중공업과 달리 현대자동차는 노조 창립 이후 올해까지 19년 동안 분규로 몸살을 앓았다.

“두 회사의 여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공업은 창사 이후 33년간 단 한 차례도 정리해고가 없어 조합원들이 ‘회사가 잘돼야 나도 잘 된다’는 책임의식이 매우 강하다. 반면 자동차는 1998년 외환위기 때 정리해고를 했기 때문에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박하다.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에 ‘근무할 때 조금이라도 더 받아 내자’는 인식이 팽배한 것 같은 느낌이다. 회사 측도 장기 비전을 갖고 파업을 해결하기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처해 화(禍)를 키웠다고 본다. ‘고용 불안’ ‘파업 불패(不敗)’가 현대차 사태의 본질이다.”

―현중 노조는 지난해 선박 발주를 해준 외국 선주사에 감사편지를 보냈고, 선주사는 납기일을 지켜 준 노조에 특별상여금까지 줬다. 상생의 노사관계를 앞으로도 계속 추진하나.

“당연하다. 조선업의 무대는 세계다. 노사가 화합해야만 외국에서 기업의 경쟁력이 생기고 고용 창출과 고용 안정으로 이어져 결국 조합원들에게 득이 된다. 그래서 올해는 노사 교섭위원을 예년의 절반인 11명으로 줄였다. 해외영업활동에 나서야 할 고급 두뇌집단인 임원들이 노사 협상에 발목이 잡히는 일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현대자동차의 올해 노사 교섭위원 은 각 25명이었다.) 회사가 어렵다면 나도 직접 해외영업활동에 나설 것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현중 노조가 국내 노동운동의 ‘메카’였기 때문에 최근의 행보에 대해 일부에선 ‘변절’이라고도 평가하는데….

“현중 노조는 바람직한 변화를 했다. 자본을 타도해야만 노동해방이 이룩된다는 그릇된 노동운동관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회사가 잘돼야 ‘정년퇴직 이후의 건강한 삶’도 영위할 수 있다. 선진복지노조 건설과 안정 속의 미래 보장이 현중 노조가 지향하는 목표다.”

―현중 노조는 사내 협력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분신자살에 적극 대처하지 않고 ‘반(反) 노동계 입장’에 섰다는 이유로 2004년 9월 민주노총에서 제명됐다. 당시 노조의 대처가 옳았다고 보는가.

“민주노총은 분신자살 원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현중 노조가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고 비난했다. 심지어 회사 정문으로 몰려와 우리 조합원들에게 돌을 던졌다. 당시 섣불리 동조파업에 돌입했으면 임직원과 가족 등 15만 명의 생계를 민주노총에서 책임질 수 있었겠는가.”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뒤 애로점은 없나.

“우리를 보호해 줄 울타리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아직도 강경투쟁만 지향하고 있어 ‘민주노총 제명이 오히려 잘됐다’는 분위기가 지금 조합원 대부분의 생각이다. 민주노총이 상급단체였을 때 연간 6억∼8억 원씩 납부해 오던 분담금으로 노인과 어린이잔치, 주부문화탐방, 장애인과 독거노인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약 1시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3층 노조사무실에서 내려오다 보니 바로 밑 2층에는 1야드 생산총괄중역인 하종윤 전무실이 있었다. 과격 분규를 주도할 때 ‘적’으로 간주했던 회사 중역과 ‘동거’하는 모습에서 현중 노조의 변화된 모습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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