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오디세이]애국가만큼 ‘평화-민중적’ 국가도 드물다

  • 입력 2006년 6월 26일 03시 03분


코멘트
밤마다 월드컵 중계가 계속되면서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비장한 각오로 서 있는 모습과 함께 연주되는 출전국의 국가들이 관심을 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국내에서는 월드컵 출전국들의 국가를 담은 음반(굿인터내셔널)이 출시됐다. 그 음반에 소개된 국가를 들어보면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눠지는 것 같다. 군주제의 전통이 오래된 유럽 국가의 경우 국왕이나 황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많다. 영국의 ‘신이여 우리의 여왕을 보호하소서’가 대표적이다. 18세기 초 시인 헨리 캐리가 가사를 짓고 작곡한 곡이다. 하이든(1732∼1809)은 영국에서 이 노래를 듣고 감동받아 현악 4중주 ‘황제 찬가’를 작곡했다. 이 곡의 2악장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국가로 동시에 사용됐다. 독일의 경우 나치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 곡을 국가로 쓰고 있지만, 오스트리아는 1946년 모차르트의 ‘프리메이슨 찬가’에 곡을 붙인 ‘산의 나라, 강의 나라’로 국가를 바꿨다.

독립혁명 또는 전쟁터에서 지어진 행진곡풍 국가도 많다. 프랑스인들이 열광적으로 부르는 ‘라마르세예즈’가 그런 경우다. 프랑스 국가는 1792년 독일이 프랑스 동부 알자스 지방을 침범했을 때 공병 장교 루제 드릴이 만든 행진곡이다. 미국의 국가 ‘성조기’는 1814년 미국과 영국이 전쟁을 벌일 때 프랜시스 스콧 키가 쓴 노랫말에 곡을 붙인 ‘천국의 아나크레온’이 병사들 사이에 널리 퍼지면서 국가로 채택됐다. 이 밖에 터키 ‘독립행진곡’, 페루 ‘길고 고통스러운 날’, 폴란드 ‘다블로스키의 마주르카’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숭고한 역사를 찬양하며 애국심을 담은 노래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우리의 애국가가 대표적이다. 브라질의 국가 ‘고요한 이피랑가의 강변에’는 지구의 허파로 불리는 브라질의 웅대한 원시림을 노래하고 있고, 노르웨이의 ‘우리가 사랑하는 신의 나라’는 북유럽의 장대하고 웅혼한 설경을 찬양한다. 캐나다의 국가 ‘단풍잎이여 영원하라’, 타고르가 노랫말을 지은 인도 국가 ‘인도의 아침’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침략과 식민지배, 전쟁의 비극을 겪었음에도 대한민국의 애국가는 호전적인 행진곡풍과는 거리가 멀다. 역시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