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오디세이]신화 역사로 만드는 中…신화도 역사도 못찾는 韓

  • 입력 2006년 3월 18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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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세 씨의 만화 ‘천국의 신화’를 펼쳐봅니다. 중국 하화(夏華)족의 선조인 황제(黃帝) 헌원과 동이(東夷)족의 선조인 염제(炎帝) 신농 및 그 후계자인 치우의 피비린내 나는 탁록대전이 실감나게 펼쳐집니다.

이번엔 중국 동북공정의 가장 최신 연구결과를 집적했다는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을 번역한 ‘동북공정 고구려사’를 펼쳐봅니다. 고조선과 고구려의 민족은 염제와 황제의 공통 후손이라는 뜻의 염황(炎黃)씨 족에서 유래했으므로 중국의 역사라고 설명합니다.

두 텍스트는 모두 삼황오제의 시대, 그중에서도 복희, 신농, 여와씨의 삼황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모두 삼황오제의 시대를 역사시대가 아닌 신화시대로 규정해 왔습니다. 즉 삼황오제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신화적 상상력의 기록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삼황시대는 동양 역사학의 비조로 꼽히는 사마천도 “삼황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외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텍스트 사이에는 커다란 간격이 존재합니다. ‘천국의 신화’는 한국의 만화이고, ‘고대 중국 고구려역사 속론’은 중국 정부 차원의 저술이라는 점입니다.

중국 정부는 동이족 문화를 자신들의 역사로 포섭하려는 동북공정 외에도 하상주(夏商周) 시대를 역사화하려는 단대공정(斷代工程·1996∼2000년), 삼황오제 이전 시대까지 역사화하려는 탐원공정(探源工程·2003년∼)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중국은 단대공정을 통해 공포한 ‘하상주연표’까지 만들어서 “고구려인이 은상(殷商)씨 족에서 분리된 것은 기원전 1600년∼기원전 1300년”이라고 정체불명의 연대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는 여전히 신화로 묶여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주로 역사기록, 그 대부분은 중국의 사서를 갖고 고조선이 신화적 국가냐 역사적 국가냐 하는 지루한 논쟁을 펼치면서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나뉘어 싸우기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인의 뿌리에 대한 의문은 김산호 씨의 ‘대쥬신제국사’나 이현세 씨의 ‘천국의 신화’와 같은 만화에서만 숨결을 유지했던 것입니다. 결국 중국이 동아시아의 신화를 역사화하는 동안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역사조차 신화로 묶어 둔 셈입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한번 되돌아봅시다. 그것은 우리의 추억의 공간에 타자가 침입한 것에 대한 ‘내 것 지키기’ 차원에 급급했던 것이 아닐까요. 중국의 침탈에 대한 진짜 대응은,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이제 ‘아(我)와 비아(非我) 간의 투쟁’에서 벗어나 과연 우리의 뿌리는 어디에서 연원하는가라는 진지한 내면탐구로 전환할 때가 됐습니다. 과거에는 혼란스러운 문자기록만이 유일한 횃불이었지만 이제는 고고학적 증거 발굴, 언어학적 계보 탐험, 인류학적 비교 연구, 유전자 분석 등 다양한 탐험 장비가 준비돼 있습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됐건 동북아역사재단이 됐건 중요한 것은 이 장비들을 슬기롭게 조합해 우리의 진짜 뿌리를 찾는 일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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