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 월드컵!]<1>야구천재 이종범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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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야구 천재’ 이종범(KIA)이 활짝 웃는 얼굴로 잠실야구장에 누워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4강을 기원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축구 선수가 꿈이었던 ‘야구 천재’ 이종범(KIA)이 활짝 웃는 얼굴로 잠실야구장에 누워 2006년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4강을 기원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2006 독일 월드컵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월드컵 축구에 대한 관심은 남성들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연령층과 여성들에게까지 폭넓게 확산됐다. 월드컵을 기다리는 각계각층의 축구팬들을 만나본다.》

● 2002년 대구 원정때 후배들 데리고 거리서 “대∼한민국”

2002 한일 월드컵 한국-독일의 준결승이 열린 2002년 6월 25일 저녁.

원정 경기 차 대구에 머물고 있던 프로야구 KIA 이종범(36)은 좀이 쑤셔 도저히 숙소에 있을 수가 없었다.

미리 준비한 빨간색 티셔츠로 갈아입고 얼굴에 작은 태극기를 그려 넣자 준비 완료. 이종범은 후배들을 데리고 대구 그랜드호텔 앞에서 펼쳐지던 거리 응원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목 놓아 “대∼한민국”을 외쳤다. 이종범은 이튿날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던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나 또다시 월드컵의 계절이 돌아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바라보는 그는 새로운 감회에 젖어 있다.

● 어릴적 꿈은 축구선수… 매년 겨울엔 고교 동문축구대회 핵심멤버

이종범은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해 한국야구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돌아왔다. 한국은 미국 일본 멕시코 등을 완파하고 초대 WBC 4강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종범은 야구에 이어 축구가 다시 한번 온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는 “4년 전 4강의 기적을 이뤘던 경험 있는 선수들이 이번에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16강에 든 뒤 8강, 그리고 4강까지 올라갔으면 좋겠다. 나도 온 힘을 다해서 응원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종범은 ‘야구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못잖게 축구광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야구 선수가 아닌 축구 선수였다. 가정 형편이 그리 넉넉지 못했던 그는 공 하나만 있으면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축구가 너무 좋았다. 그러나 그가 입학한 광주 서림초등학교에는 축구부가 없었다. 이종범은 “너무 아쉬웠지만 야구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게 오히려 나에겐 훨씬 잘 된 것 같다”고 웃음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는 요즘도 틈만 나면 축구를 즐긴다. 매년 겨울 열리는 광주일고 야구부 동문회의 친선 축구 경기의 핵심 멤버다. 워낙 운동 신경이 뛰어난데다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처럼 발도 빨라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종범은 “나도 잘하는 편이지만 김병현(콜로라도)과 서재응(LA 다저스) 등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야구 후배들도 정말 축구를 잘한다”고 말한다.

● 고2때 헤딩하다 떨어져 36시간 혼수상태되기도

축구를 하다가 아찔한 경험도 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헤딩을 하기 위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가 균형을 잃어 머리부터 거꾸로 땅바닥에 떨어진 적도 있다. 뇌진탕을 당한 그는 꼬박 36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깨어났다. 그 후로는 축구를 해도 상황을 봐가며 절대 무리는 하지 않는다.

2002년 월드컵 때 그는 모교인 건국대 2년 선배 황선홍(전남 코치)과 1년 후배 유상철(전 울산)의 활약에 열광했다. 이종범은 “올해는 7년 후배인 이영표(토트넘)가 잘할 것만 같다. 모교 출신들이 잘하니까 더욱 응원을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을 맺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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