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향기속으로 20선]<4>나를 부르는 숲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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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여느 공간과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이다. 나무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위에서 짓누르며 모든 방향에서 압박한다. 경치를 가로막고 당신이 어디 있는지 분간하지 못하도록 한다. 당신을 왜소하고 혼란스럽고 취약하게 해 놓은 다음, 마치 낯선 사람들의 무수한 다리 사이에서 길을 잃은 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숲은 거대하면서도 특징 없는, 게다가 어디가 어딘지 모르는 공간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 있다.―본문 중에서》

목숨 걸고 산과 자연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마치 우우우 몰려오는 먹구름을 피해 필사적으로 피난처를 향해 뛰어가는 한 무리의 포유류 떼를 연상시킨다. 그런 피난 대열에 끼어들고 싶은 때가 있다. 벽 앞에 가로막혀 삶의 전환이 필요한 때, 도대체 왜 사는지 의미를 찾기 힘들어 하루에도 몇 차례씩 호흡곤란과도 같은 막막함이 찾아오는 때….

저널리스트 빌 브라이슨이 20년간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제 나라 미국으로 귀국하던 때의 나이가 43세였다. 본격적인 중년기,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시작. 그가 새 출발의 준비운동으로 계획한 것이 등산이었다. 하지만 주말에 네댓 시간 북한산에 오르는 레저 수준이 아니다. 전장 3360km, 조지아 주 스프링어 산에서 저 북부 메인 주 캐터딘 산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며 최소 기간 5개월, 통상 500만 번의 발걸음이 필요하다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이었다.

규모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우리와 비교해 보자. 언젠가부터 꽤 근사한 유행이 된 백두대간 종주의 남한 지점, 그러니까 지리산 천왕봉에서 진부령까지가 670km다. 아예 백두산 꼭대기까지 곧장 치고 올라간다면 총길이 1400km. 백두대간의 두 배가 훨씬 넘는 코스를 ‘어이 친구, 우리 산이나 한번 탈까’ 하고 출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거의 코미디언 수준으로 자신을 묘사한다. 먼저 장비를 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이 총동원된다. 기막힌 양의 바보 같은 물건들을 터무니없는 고가로 사야 했던 것. 그리고 결정적인 희극은 이 책의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인 동행인 문제. 사방에 호소를 해봤지만 누구도 그 엄청난 모험에 동참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그때 ‘짠’ 하고 나타난 인물이 어릴 적 친구 스티븐 카츠. 1시간마다 뭔가를 먹어대야 하는 게으름뱅이 뚱뚱보에다 마약과 알코올 의존증 치료 경력이 있는, 책임감과 인내심하고는 담을 쌓은 막일꾼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떠난다.

어린애 팔을 먹어치우는 불곰이며 수억 마리로 추정되는 흑파리떼 등 야생의 공포가 나온다. 천변만화하는 광란의 기후며 하염없이 험준하고 끝이 없는 산세, 숲세(?) 앞에서 극한체험이 반복된다. 견딜 수 없는 고독과 고립감 그리고 기질이 전혀 다른 두 사람 간의 신경전도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사이사이 현장의 지질학, 지리학, 역사학, 환경공학, 어리석은 정부 행정의 결과물들이 개입된다. 하지만 독자는 끊임없이 킬킬댄다. ‘깔깔’이 아니라 갈빗대 부근에서 치미는 묵직한 ‘킬킬’이다. 상황은 엄혹한데 그 묘사가 성석제 소설풍인 까닭이다.

이 두 어울리지 않는 친구들의 행군은 1392km. 전체 트레일의 39.5%에서 멈춘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리석던 카츠가 명언을 남겼다. ‘어쨌든 우리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잖아!’라고. 이들의 생이 이후 얼마나 다른 성격의 것으로 전환됐을지 짐작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나는 왜 읽는 내내 못난이 카츠에게로 감정이입이 되는 것일까.

김갑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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