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승련]美선거기술자들의 여론몰이 재주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46분


코멘트
선거는 무엇으로 치르는가. 정당과 후보의 실체인가, 아니면 이미지와 감정 조작인가.

11월 미국 상하원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미 선거의 계절이 시작된 워싱턴 정가를 지켜보면서 거듭 떠올려 보는 질문이다.

이번 중간선거의 관심사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잇따른 정책 실패가 평가될 것인지, 그래서 민주당이 의석을 늘릴 것인지에 모아진다. 공화당 부시 행정부가 워낙 죽을 쑨 탓에 현재로선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로비 스캔들, 비밀 정보기관원 이름 유출, 바닥난 재정, 허리케인 카트리나 헛발질 대응….

그런데 정작 이런 꽃놀이패를 쥔 민주당의 선거 걱정이 태산이란다. 민주당은 알맹이 즉, 당의 실체가 허약해서가 아니라 공화당 선거 기술자의 여론몰이 재주가 두렵다고 한다. 민주당은 스스로 중산층을 위한 정책에서 우월하다고 믿고 있다.

워싱턴에서 2004년 대선을 지켜본 결과 두 정당 선거공학자의 실력 차는 분명히 있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호재가 많았다. 하지만 공화당은 역대 최다득표를 기록하면서 이겼다. 어느 나라나 대선 승리 이유는 100가지쯤 댈 수 있다지만, 공화당 선거일꾼들의 기획력이 큰 요인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공화당 선거공학자들은 “민주당은 서민과 괴리된 소수 엘리트의 정당이며, 엘리트는 보통 미국인을 우습게 여긴다”고 끊임없이 묘사했다. 캔자스 주의 가게 종업원과 농업노동자는 사회보장제도를 확충하겠다는 민주당이 안겨 줄 현실적 이익 대신에 “성경에 충실하지 않고, 거만한 보스턴 엘리트에게 표를 못 준다”는 1차적 감정에 충실했다. 결과는 공화당의 승리. ‘캔자스에 뭐가 꼬였기에(What's the matter with Kansas)’라는 책의 진단이 그렇다.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부시의 두뇌’로 통하는 칼 로브라는 인물이 막후에서 기획한 결과다.

가령 이런 식이다. 로브 씨는 올해 1월 30%대 지지에 머물던 ‘테러 방지 목적으로 영장 없이 수사기관이 도청할 권한을 대통령이 부여할 수 있느냐’는 논쟁을 선거 쟁점으로 삼자고 했다. 단, “알 카에다 조직원이 해외에서 미국인에게 국제전화를 건다면 미국 정보기관이 통화내용을 들어야 하지 않느냐”라고 바꿔 물을 것을 주문했다. 질문 문구가 달라진다면? 다른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50%는 “그럴 수 있겠다”고 답했다.

민주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재주’다. 하지만 문구가 바뀐다고 사안의 본질이 달라졌을까.

민주당은 벌써부터 하나하나 대응책을 세우며 부산하다. 동성애 결혼문제는 이렇게 답하고, 총기 규제 사안은 저렇게 대응하고….

동시에 민주당은 유권자에게 ‘그들은 포퓰리스트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미래를 한번만 더 생각해 달라’고 호소하는 전략도 세워 놓았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런 호소가 ‘단순해야 통하는’ 선거판에 먹힐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도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어느 정당이건 때가 되면 선거공학자가 나서 이런 게 선거 이슈가 돼야 한다거나, 그 사안은 그렇게 볼 게 아니라 이렇게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양극화, 세금 걷기, 사회보장제, 북한 포용정책에서 벌써 그런 조짐이 엿보인다.

선거는 전략가의 감성적인 홍보나 전략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 해도 뒷맛은 개운치 않다.

선거는 투표소에서 도장 찍는 행위, 그 이상이다. 내가 누구인지,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정치행위다. 결국엔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산다. 공화당 공포심에 질려 있는 민주당은 앞으로 이런 기도를 계속해야 할 것 같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