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윌리엄 파프]고이즈미 승리는 동북아 변화의 전조

  • 입력 2005년 9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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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총선 승리는 주로 일본 경제의 부흥과 경제구조 개편이라는 측면에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그의 압승에는 더욱 흥미로운 요소가 있다. 반세기 이상이나 보수적인 제도, 관료적인 정당과 정부, 개인을 억누르는 집단주의적 정치행위가 유지돼 온 일본에서 ‘고이즈미라는 개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필자의 머릿속에는 프랑스의 신임 총리 도미니크 드빌팽이 떠오른다. 겉모습뿐 아니라 지적 절충주의, 극적으로 보이려는 행동 등에서도 두 사람은 닮았다. 드빌팽은 프랑스 정치무대에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고 고이즈미는 일찌감치 과감한 정치력을 보여 온 인물이지만 두 사람은 흥미로울 정도로 닮았다.

고이즈미의 승리가 일본의 무기력한 정치 및 정당 시스템을 바꾸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일본에서 개혁이 이루어지면 매우 극적으로, 과격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이지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직후가 좋은 사례다.

일본 국내 문제에도 개혁할 점은 많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일본의 국제적 상황과 외교 정책이 긴장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은 반세기 동안 얼어붙어 있었다. 미국의 전략적 위치는 일본과 한국에 있는 군사시설에 의해 고착화되어 왔다.

중국은 1976년 마오쩌둥이 죽은 뒤 해빙(解氷)이 이루어졌다. 공산당의 통치는 중국을 현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고 자연스럽게 이데올로기의 중압도 줄어들었다. 이런 과정의 결과 1979년 미중 수교가 이루어졌다.

일본은 미국의 ‘수동적인 동맹국’으로 머물렀을 뿐 이 지역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국은 북한 정권의 위험한 극단주의와 대결해 왔다. 한국은 최근까지 미국에 의존하는 동맹국으로 남아 있었으나 최근 들어 북한 문제를 독자적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를 바꾸어 나가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 부상과 함께 이 지역에서 강대국으로서의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국제 사회는, 특히 미국은 이 요구를 일종의 허풍으로 받아들여 왔다.

중국 경제에는 아직도 자율성과 창의적, 독자적인 기술력이 부족하며 외국 투자 의존도가 높다. 중국은 미국의 채권국이면서 미국과의 무역에 의존하고 있다. 미중 관계에는 그런 (이중적) 상황이 결부되어 있다. 이 상태는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위협적인 존재라는 공포심을 갖고 있다. 이는 고립적이고 의존적인 동맹국 일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년) 이후 중국과의 관계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근원을 따라 올라가면 16세기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명나라와 충돌(임진왜란)했던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중일관계의 난점은 미중 간의 경쟁관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일본으로서는 미중 간의 경쟁이 골치 아픈 일이다. 미국 보수우파가 아시아에서의 헤게모니를 시험하기 위해 중국과 군사 분쟁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는데, 일본은 이런 분쟁에 간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어쨌든 일본은 오늘날의 대미관계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고이즈미는 미국과의 동맹을 확고하게 다지고 있지만, 그는 날로 강력해지는 일본 국가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가 야스쿠니신사에 정기적으로 참배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 대가로 그는 중국 및 한국과의 선린 관계를 희생시키고 있다. 결국 고이즈미의 총선 승리는 단지 일본 경제에만 국한되지는 않을 큰 변화의 전조가 되고 있다. <도쿄에서>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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