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만나는 시]장석주/내 핏속의 야생 호랑이

  • 입력 2005년 7월 28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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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 깊숙이 차가운 공기를 빨아들인다

내 핏속에

야생의 호랑이는 살아 있다

나 도무지 살뜰하지 못해

나쁜 음식과 잘못된 습관으로

소년과 숨가쁜 청춘 시절을 지나왔다

게으름과 잡식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는 살아 있다

내 핏속의 호랑이는

가끔은 영감과 상상을 낳는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심연의 하늘을 향해 성큼성큼 나아가며

야생 호랑이는

검은 돛배보다 튼튼한 두 다리로 달린다

몸은 고이 모셔두고 건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일에 아낌없이 쓰는 것

야생 호랑이는

곤핍한 마흔 줄의 아침에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으니

그가 비겁한 짐승을 쓰러뜨려 살을 찢을 때

진동하는 향긋한 피 냄새를 맡고

나는 포효를 한다

- 시집 ‘간장 달이는 냄새가 진동하는 저녁’(세계사) 중에서

호랑이가 살아 있다니! 백두대간 다 뒤져도 보이지 않던 조선 호랑이가 시인의 핏속에 숨어 있을 줄이야. 우두둑- 비겁한 짐승의 뼈를 씹는다고요? 상쾌해라. 그런 먹이라면 얼마든지 있어요. 우리 안의 어리석고, 못나고, 좀스럽고, 치사하고, 이기적인 짐승쯤이야 하루에도 열두 마리 드리지요. 비겁함을 먹고 영감과 상상을 주세요. 저벅저벅 핏줄강을 딛고 세상으로 나오세요. 우리들 싱싱한 핏줄 속으로 아흔 마리 잉어가 용솟음치며 올라가는 이 아침에.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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